경제민주화-투기자본 놀이터 사이
기업경영 사사건건 개입 가능성… 저성장 늪 한국경제 부담 가중
“방향 옳지만 신중한 접근 필요”
최근 들어 ‘재벌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0대 국회가 여소야대로 재편되면서 경제민주화 분위기가 확산된 결과다. 이런 분위기를 틈타 해외 투기자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7일 재계에 따르면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5일(현지 시간) 삼성전자에 ‘주주가치 증대 제안서’를 보낸 것은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약한 고리를 노린 것과 함께 국내 정치 경제 상황까지 고려한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행동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에 요구한 ‘새 사외이사 3인 선임’의 경우 야당이 경쟁적으로 발의한 상법 개정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다. 상법 개정안에 포함된 감사위원 분리 선임과 집중투표제 등은 소액주주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해외 투기자본들이 손쉽게 국내 기업의 이사회로 진입할 통로가 될 수도 있다.
단기 이익을 노리는 투기자본이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등 국내 대표 기업 이사회에 진입할 경우 주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할 때마다 대규모 투자와 같은 주요 결정에 제동을 걸 게 뻔하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 투명성 강화 등의 순기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장기적인 성장 전략을 짜야 하는 기업들로서는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 일각에서는 저성장의 늪에 빠진 한국 경제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경제 전문가들은 오랜 관행 속에 지나쳐온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내고 일부 기업들에서 나타난 부도덕한 행위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개혁’의 필요성에는 대부분 동감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려면 마치 담장 위를 걷는 것처럼 신중하고 냉정하게 재벌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내법에는 해외 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를 막기 위한 경영권 방어수단이 거의 없다”며 “섣부른 개혁은 결국 소액주주들의 보호라는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기에 앞서 해외 투기펀드가 공격할 수 있는 약점만 노출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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