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의 운명을 결정지을 ‘디데이(D-day)’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KDB산업은행은 30일까지 각 채권금융기관으로부터 한진해운 자율협약(9월 4일 종료) 연장과 신규자금 지원 여부에 대한 답변을 받기로 했다.
그동안 채권단과 한진그룹은 유동성 부족분 ‘3000억 원+α(플러스알파)’ 지원 주체를 놓고 절충안을 찾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진해운은 해외 금융기관의 선박금융 상환유예 동의 사실을 새로 공개하면서 생존을 위한 ‘최후변론’에 나섰다. 한국 해운업의 큰 그림을 봐야 한다는 해운업계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수조 원의 자금 지원을 한 조선업과 형평성에 차이가 난다는 지적도 끊이질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한진해운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카드를 만지작거렸던 채권금융기관 사이에서도 최종 결정을 앞두고 고민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 “3000억 원 아끼려다 17조 원 손실”
한진그룹은 28일 ‘한진해운 법정관리 위기에 대한 입장자료’를 내고 “27일 독일 HSH 노르트방크, 코메르츠방크, 프랑스 크레디아그리콜 등이 산업은행 보증 없이도 해운 선박금융 채권 상환유예에 동의하겠다고 알려왔다”며 “이들의 상환유예만으로도 1280억 원의 자금 조달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채권단이 추가 필요자금을 산정할 때 이미 ‘선박금융 유예’를 전제로 했기 때문에 당장 달라지는 건 없지만, 한진해운으로서는 불확실성이 사라졌다는 데 의미가 있다. 한진그룹은 또 난항을 겪어오던 최대 선주사 시스팬과의 용선료 조정 협상에서도 ‘산업은행의 경영 정상화 동의’를 조건으로 합의를 마무리했다고 공개했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25일 제출한 4000억 원 추가 투입 자구안은 한진그룹이 조달할 수 있는 최대치”라며 “최악의 상황은 피해 한진해운만은 생존시켜 주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해운업계는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 결국 청산 절차를 밟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선주협회는 이날 “한진해운의 청산은 매년 17조 원의 손실과 2300여 개의 일자리 감소를 불러올 것”이라며 “또 금융기관 차입금 8800억 원을 포함해 국내 채권 3조200억 원도 회수하지 못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선주협회는 또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을 합병하면 5∼10%의 원가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국제 해운시장에서도 입지를 구축할 수 있다”며 “개별 회사가 아닌 국가 차원의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 조선에 비해 채권단 위험이 적은 해운
한진해운이나 선주협회는 채권단에 추가 지원을 요구하면서 대우조선해양(4조2000억 원), STX조선해양(4조 원), 성동조선해양(2조5000억 원) 등 조선업계가 이미 10조 원 이상을 지원받았다는 ‘전력’을 내세웠다. 그러나 채권단은 “조선과 해운은 완전히 성격이 다르다”고 일축하고 있다.
조선과 해운업종에 다른 원칙을 적용하는 근거는 우선 자금 수혜 대상이 달라서다. 국내에 사업장을 둔 대우조선에 자금을 지원하면 4만2000명의 직원과 협력업체들의 일자리가 유지될 수 있다. 반면 한진해운은 직원이 1400여 명뿐이다. 채권단은 신규 지원 자금의 대부분이 해외 선주들의 주머니만 채울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두 산업의 전혀 다른 여신 구조도 영향을 미쳤다. 은행들은 조선업체가 계약을 수주하면 선수금환급보증(RG)을 발급해준다. 대우조선이 법정관리로 가면 채권단이 선주들에게 RG에 해당하는 금액을 물어줘야 한다. 반면 해운업체의 경우 통상 전체 차입금 중 은행권 차입금 비중이 30% 안팎이다. 28일 현재 한진해운에 대한 은행권 익스포저(위험노출액)는 산은 6660억 원을 포함해 총 1조200억 원가량이다. 대부분의 은행은 이미 한진해운 여신에 대한 충당금을 쌓아놓아 법정관리로 가더라도 금융권 리스크로 번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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