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신청 눈치보여” “사내정치 소홀해져”… 정착까지 먼 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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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스마트워크 어디까지 왔나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의 서울특별시인재개발원. 서울시가 2010년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설치한 스마트워크센터가 있는 곳이다. 스마트워크센터는 직원들이 굳이 청사로 출근하지 않고도 일을 할 수 있게 만든 사무공간. 하지만 이날 출입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문 옆에는 ‘스마트워크센터 폐쇄’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6년 전 서울시가 스마트워크센터를 구축하는 데 들인 비용은 2억5600만 원. 운영비도 매년 1400만∼3500만 원이 들어갔다. 이곳은 문을 열 때만 해도 일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꿀 미래형 일터로 주목받았다. 첫해 497명, 이듬해 2115명으로 이용자가 늘어나는 듯했지만 2012년부터 사용자가 줄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33명, 올해는 단 6명만 이용하는 데 그쳤다.

서울시 관계자는 “직원들이 스마트워크센터를 찾는 대신 출근 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시차출퇴근제를 선호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문을 닫은 서울시 스마트워크센터는 한국의 일하는 문화가 바뀌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스마트워크, 직장인 3분의 2가 알지만…

‘스마트워크 근무율을 2015년까지 공무원 30%, 전체 노동인구의 30%로 확대하겠다.’

2010년 7월 대통령소속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가 내놓은 보도자료 내용이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저출산, 고령화, 낮은 노동생산성 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스마트워크 활성화 전략을 내세웠다. 스마트워크는 일하는 방식을 유연하고 ‘스마트하게’ 바꿔 보자는 것으로 재택근무와 시차출퇴근제(근로자가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선택), 스마트워크센터 근무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른 아침이면 잠이 덜 깬 채로 통근버스에 몸을 싣고 밤이면 녹초가 돼 집에 돌아가는 직장인의 일상을 혁신적으로 바꿔 보자는 게 스마트워크의 도입 취지였다. 정부는 스마트워크가 먼 출퇴근 거리 때문에 길에서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수도권 근로자의 통근 시간을 하루 평균 90분 줄이고, 1조6000억 원의 교통비용을 절감할(사무직 860만 명이 동참할 경우) 거라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그 후 약 6년이 지난 지금, 스마트워크는 우리 일상에 얼마나 밀접하게 자리 잡았을까. 올 2월 정부가 내놓은 ‘2015 스마트워크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스마트워크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응답자는 조사 대상의 3분의 2(66.6%)나 됐다. 스마트워크 참여자의 만족도도 높았다. 스마트워크를 활용하고 있는 개인들은 출퇴근 시간과 비용 절감(73.2%·이하 복수 응답), 육아와 가사 시간 확보(63.6%)에 효과가 있다고 답했다.

문제는 정부의 기대만큼 민간 기업으로 스마트워크가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민간부문의 스마트워크 도입률(스마트워크 도입 기업 비중)은 14.2%에 그쳤다. 정부세종청사나 혁신도시 입주로 스마트워크센터를 이용해본 공공부문 종사자가 전체의 85.8%에 이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회사 대표, 관리자의 부정적 인식 바뀌어야

“유치원에 다니는 딸아이가 등원하는 걸 봐줄 수 있어 좋긴 했지만 직원들과 점점 거리감이 생기더군요. 승진에도 불이익이 갈 것 같아 걱정됐고요.”

스마트워크센터 근무를 신청했다가 다시 회사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A 씨(36·여) 얘기다. 실제로 적지 않은 직장인이 A 씨처럼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해 스마트워크 활용을 주저한다.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조직문화의 혁신이 뒷받침되지 못해 정책과 현실이 겉돌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국내에 만연한 대면 중심, 특히 회사에 오래 붙어 있어야 승진과 성공이 보장되는 식의 직장문화가 스마트워크 도입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지적한다. 이승윤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는 “회식에 꼭 참석하는 직원과 자주 가지 않은 직원 중 전자가 더 후한 평가를 받는 게 우리 조직 풍토”라며 “상사의 눈에 안 보이면 일을 안 한다고 여길까 봐 외근을 하다가도 회사에 들러 얼굴 도장 찍고 퇴근하는 게 직장인의 현실 아니냐”라고 꼬집었다. 외국 기업들이 직원 평가 시 근무시간 대신 최종 성과를 기준으로 삼고 자율성을 많이 보장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인사·조직 컨설팅업체 머서코리아의 박형철 대표는 “국내 대기업에는 특정 업무의 전문가보다는 ‘사내 정치의 전문가’여야 승진할 수 있다는 인식이 신입 직원에게까지 퍼져 있다”며 “정량적 업무 평가보다 정성적 평가가 영향을 발휘하는 현실에서 직장인이 꿈꾸는 일과 가정의 양립은 먼 나라 얘기”라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양성평등을 위해 만들어진 각종 제도도 대다수 직장인에겐 ‘그림의 떡’일 뿐이다. 남성 육아휴직 제도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전체 육아휴직자 중 남성의 비율은 5.6%에 그쳤다. 아직도 육아를 여성의 몫으로 보는 시선이 적지 않고, 특히 남성은 직장 상사의 눈치를 많이 봐야 해 부모가 함께 육아를 책임지는 분위기가 정착되기 어려운 것이다.

전문가들은 관리자들의 인식 전환과 유연한 사고가 스마트워크 활성화의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스마트워크를 여성, 청년 등 일부 계층의 업무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한정하거나 비용 절감의 한 방법으로 간주하기보단 조직문화를 개선해 기업의 영속성을 높이는 수단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인사 컨설팅 전문업체 콘페리 한국법인의 고준 전무는 “‘사내 정치’에 무심하다면 일찌감치 승진에 대한 기대는 접고 치킨집 창업을 하는 게 낫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큼 한국 기업 문화는 경직돼 있다”며 “기업의 인재들이 우수한 성과를 낼 수 있게 돕는 방법의 하나로 스마트워크를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부터 유연근무나 재택·원격근무를 도입한 중소기업에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도영 고용노동부 고용문화개선정책과장은 “유연근무제를 도입한 기업들의 생산성 향상과 직원 만족도 증대가 수치로도 증명되는 만큼 기업에서 적극적으로 이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창규 kyu@donga.com·강성휘·김재희 기자
#스마트워크#유연근무제#거점근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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