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R]안되면 조직문화 탓… 사업모델 먼저 바꿔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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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인이든 경영학자든, 조직문화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한다. 기업 경쟁력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메뉴 중 하나도 조직문화다. ‘자율적 문화’ ‘창의적 문화’ ‘수평적 문화’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 등 조직문화 앞에 따라붙는 수식어만 따져도 열 손가락이 모자란다. 동시에 조직문화는 기업이 큰 어려움에 처했을 때 종종 문제의 주범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즉, ‘권위적 문화’ ‘위계적 문화’ ‘보신주의 문화’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문화’ 등 각종 바람직하지 못한 문화 탓에 기업이 화를 당했다는 식이다. 이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려면 조직문화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하버드경영대학원의 제이 W 로시 교수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코리아 최신호(2016년 4월호)를 통해 “조직문화는 개선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정작 개선해야 할 것은 낡은 전략과 비즈니스 모델이며 조직문화의 변화는 그에 따른 결과로 나타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기업이 위기를 겪는 건 비즈니스 자체가 손상됐기 때문인데, 많은 이들이 조직문화를 문제의 원인인 양 취급하는 태도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 로시 교수는 조직의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글로벌 기업의 전·현직 최고경영자(CEO)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하고 전략과 비즈니스 모델 개선이 어떻게 조직문화의 변화로 이어졌는지를 분석했다.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 앨런 멀럴리, 수렁에 빠진 포드를 건져내다

보잉에서 37년간 일하며 항공 산업계의 ‘스타 경영자’로 통했던 앨런 멀럴리가 2006년 9월 포드자동차의 CEO가 됐을 때, 포드는 거의 파산 지경에 있었다. 그해 포드는 127억 달러의 순손실을 냈다. 창립 103년 만에 최악의 적자였다. 하지만 2014년 7월 멀럴리가 포드를 떠났을 때 회사는 5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고 주가도 대폭 상승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 자동차 ‘빅3’ 중 GM, 크라이슬러와 달리 포드만이 유일하게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지 않고 꿋꿋이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멀럴리의 리더십 덕택이었다.

멀럴리는 취임 후 인력 감축, 공장 폐쇄, 비주력 브랜드 매각 등 강력한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었다. 그는 재정적 측면의 정상화를 넘어 비즈니스 프로세스 합리화 작업에 매달렸다. 회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선 그 무엇보다 경영진이 서로 협력적으로 일하도록 만드는 게 급선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멀럴리가 합류하기 전 포드자동차는 공격적이고 치열한 경쟁적 관행으로 악명이 높았다. 같은 회사 내에서도 부서가 다르면 간부들 간 서로 정보를 공유하기는커녕 감추기에 급급했다. 사업부마다 서로 다른 차를 만들면서 따로따로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다 보니 엄청난 비효율과 낭비가 생겨나는 구조였다.

○ 비즈니스 프로세스 합리화

멀럴리는 가장 먼저 회사 임원들이 다 함께 모여 사업부 현황을 공유하는 회의를 정례화했다. 특히 현재 추진 중인 다양한 업무에 대한 성과를 회의에서 신속하고 총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컬러 코드’ 제도를 만들었다. 즉, 업무 성과가 양호할 때에는 녹색, 주의가 요구되는 경우엔 노란색, 문제가 많을 때에는 빨간색 등 업무 성과에 따라 색깔 표시를 달리해 서로의 사업 성과를 공유하고 부족한 부분을 도와가며 협력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처음엔 자신이 추진하는 사업의 문제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는 임원들이 거의 없었다. 약점이 드러날 경우 다른 사업부 임원들이 물고 늘어질까 두려워 대부분이 문제를 숨긴 채 모든 걸 장밋빛으로 보고했다. 처음 몇 차례 회의에서 모든 프로젝트의 진행 현황이 ‘녹색’ 일색인 것을 본 멀럴리가 드디어 폭발했다. 사상 최악의 적자 상황에서 어떻게 아무 문제도 없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질책했다. 결국 몇몇 용기 있는 임원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고 정직하게 문제를 털어놓으면 협력해서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후 포드 임원들은 회의에서 공유할 보고서와 차트에 각 사업부서의 현황을 있는 그대로 표시했다. 부서 간 솔직한 의사소통과 협업을 통해 신속하게 문제가 해결되자 과거 경쟁적이던 문화 역시 협력적인 문화로 변했다.

○ 리처드 앤더슨, 델타의 구원투수로 영입

2008년 당시 미국 3위 항공사인 델타항공과 6위인 노스웨스트항공이 합병하면서 세계 최대 항공사가 탄생했다. 하지만 당시 두 회사의 경영 상태는 모두 형편없었다. 두 회사 모두 파산보호 상태에서 빠져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터였다.

위기에 처한 두 항공사 간 합병은 2007년 델타의 사령탑을 맡은 리처드 앤더슨이 주도했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노스웨스트의 CEO를 지냈던 그는 미국 동부 연안과 대서양 횡단, 남미 노선에 강점을 가진 델타가 태평양 및 미국 중서부 지역을 운항하는 노스웨스트와 합병할 경우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후 앤더슨은 노사 화합을 중시하며 적극적인 인재 중심 경영을 통해 델타의 부활을 이끌어 냈다. 앤더슨은 어떤 경영자보다 노스웨스트 내부 사정과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보기에 노스웨스트의 가장 큰 문제는 경영진에 적대적인 강성 노조였다. 노조는 직원과 경영진 간의 직접 소통을 어렵게 만드는 걸림돌이라는 게 앤더슨의 판단이었다.

○ 인재 중심 경영으로 화려한 부활 이끌다

이에 따라 앤더슨은 합병 후 통합 작업(PMI)을 추진하면서 성과에 대한 충분한 보상 및 동기 부여를 통해 직원과 경영진 간 강력한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데 힘썼다. 대표적 예로 그는 매년 세전 수익의 10%를 직원들에게 보너스로 줬다. 일종의 직원이익공유제 프로그램을 실시한 것. 또 회사 주식의 15%를 조종사, 승무원, 지상 근무자 및 지원 인력 등 전 직원을 위한 우리사주로 할당했다. 이 밖에 앤더슨은 직원들에게 최고 수준의 교육 및 훈련을 제공했고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하는 등 직원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경영진의 이 같은 노력은 조직 내 신뢰 문화 고양과 직원들의 충성심 제고로 이어졌다. 노조와 사측 간 경쟁 구도 역시 없어졌다. 앤더슨이 CEO로 취임한 지 2년이 지난 후 직원들은 투표를 통해 노조를 없애기로 결정했다. 오늘날 델타항공은 중동지역 이외에서 노조가 거의 없는 유일한 대형 항공사다. 부실 항공사였던 델타는 과거의 오명을 벗고 현재 내실 있는 항공사로 거듭났다. 2014년 미국 항공 전문지 에어트랜스포트월드로부터 ‘올해의 항공사’로 선정됐고,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이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상위 50대 기업에 2년 연속(2014, 2015년) 선정될 정도로 화려한 부활에 성공했다.

이방실 기자 smile@donga.com
#hbr#사업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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