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비리연루 이사 선임 반대’ 무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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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투자기업 의결권 강화 보류… 권한행사 내용 사전공개案도 불발
사외이사 75%이상 출석해야 연임

투자기업의 전횡을 방지하기 위한 국민연금의 ‘의결권행사지침 개정안’이 정작 앙꼬가 빠진 채 지엽적인 부분만 통과돼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8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문형표 장관 주재로 2014년 1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를 열고 의결권행사지침 개정안을 심의 의결했다. 이 개정안은 국민연금이 투자한 각 기업의 이사 선임 시 기업 측의 전횡을 막기 위한 것. 이 때문에 관심은 ‘비리 이사 재선임 반대안’과 ‘의결권 행사 방향을 주총 전에 공개하는 안’ 등 두 가지에 모아졌다.

‘비리이사 재선임 반대안’은 현재 ‘기업가치를 훼손했거나 주주 권익을 침해한 이력자’로 돼 있는 규정을 ‘횡령, 배임으로 1심 판결을 받은 인물’로 구체화하는 것. 또 비리 당사자뿐 아니라 함께 재직했던 이사도 감시 감독의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해 반대한다는 내용이다.

의결권 행사 여부의 사전 공개는 주식시장의 큰손인 국민연금이 특정 회사 사외이사 연임에 반대 입장을 주총 전에 공식화하는 것. 이 경우 소액주주들까지 동참하는 효과를 볼 수 있어 기업 견제 기능이 더욱 확실하게 된다.

기금운용위원회가 두 사안의 의결을 보류한 것은 기업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기업의 사외이사는 재벌 총수 일가의 도구로 이용되곤 했다. 기업의 사외이사 임명에 제동이 걸릴 경우 재벌 총수는 물론이고 자신들의 기업 경영에도 상당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금운용위원회는 전체 위원 20명 중 노동계 인사 3명이 빠져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궁색하게 변명했다. 권종호 의결 행사 전문위원장은 “위원 사이에 일부 이견이 있었고, 노동계를 빼고 의결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 같아 보류했다”고 말했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팀장은 “국민연금의 의결권 강화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었는데, 개혁의지가 후퇴되는 것 같아 유감스럽다”며 “당연히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아야 할 비리 이사들을 제한하지 못한다는 건 경제민주화에 반하는 행태”라고 말했다.

이날 위원회는 사외이사의 책임감을 강화하기 위해 연임 동의 기준 출석률을 현행 60%에서 75%로 강화했다. 이전에는 60%만 참석하면 연임에 동의했지만 이제는 75%가 참석해야 한다는 의미다. 또 해당 회사와 자회사를 통틀어 10년 이상 재직한 이사의 연임에는 동의하지 않기로 했다. 이전까지는 해당 회사에서 10년 이상 재임했을 때만 반대했다. 여러 계열사를 돌아가면서 사외이사로 장기 재임하는 것을 막겠다는 의미다.

한편 재계는 주주가치를 침해하거나 이를 방조한 인사에 대한 이사진 선임 반대 등 핵심 조항이 이날 개정안엔 반영되지 않자 안도하는 분위기다. 그러면서도 이날 통과된 사외이사 선임 기준에 대해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계열사까지 포함해 10년 이상 재임하면 사외이사를 할 수 없다는 조항은 없다”고 말했다.

유근형 noel@donga.com·박진우 기자
#국민연금#비리연루#투자기업#의결권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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