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소장 3인 “공들인 아파트 미분양 땐 내 인생 미분양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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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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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부동산 시장… 분양소장 3인의 분투기

부동산시장 침체기에 분양소장을 맡아 ‘분양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정명기 GS건설 부장, 임홍상 삼성물산 과장, 오수아 현대건설 부장(왼쪽부터). 이들은 “9·10 부동산 대책에
따른 취득세·양도소득세 감면으로 시장이 꿈틀거리고 있다”라며 “실수요자들을 위해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자세로 일한다”라고 입을 모았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부동산시장 침체기에 분양소장을 맡아 ‘분양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정명기 GS건설 부장, 임홍상 삼성물산 과장, 오수아 현대건설 부장(왼쪽부터). 이들은 “9·10 부동산 대책에 따른 취득세·양도소득세 감면으로 시장이 꿈틀거리고 있다”라며 “실수요자들을 위해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자세로 일한다”라고 입을 모았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가을 햇볕이 따사로웠던 11일 경기 김포 한강신도시에 들어서자 도로 양옆으로 각 건설사의 본보기집이 줄을 이었다. 벽면에 내걸린 광고에는 ‘파격할인’ ‘특가분양’이라는 표현이 수두룩했다. 그러나 끝자락에 있는 김포한강 래미안의 본보기집은 뭔가 달랐다.

입구에선 군밤을 굽고 있었고 짙은 커피 향과 잔디와 나무로 꾸며진 내부는 마치 카페를 연상시켰다. 아파트 상담을 받는 사람도 있었지만 단순히 수다를 떨고 있는 ‘아줌마’도 여러 명 보였다. 분양소장인 임홍상 삼성물산 과장은 이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건설회사들에 미분양 아파트는 골칫덩어리 재고상품이다. 제아무리 고급 인테리어로 꾸미고 좋은 입지에 지은 아파트라 해도 계약이 체결돼야 건설사에 비로소 현금이 들어온다.

요즘 같은 부동산 불경기에는 건설사들이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미분양 줄이기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미분양 해소의 최전선에 나선 분양소장들의 어깨는 더욱 무겁다. 분양소장 3인을 직접 만나 그들의 분투기를 들어 봤다.

○ 분양 맡은 미분양 아파트 직접 매입

정명기 GS건설 부장은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식사지구 ‘자이 위시티’ 분양소장만 4년째다. 4683채의 대단지인 데다 중소형이 아닌 대형 위주로 구성돼 부동산시장 침체기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1, 2층 물량 위주로 2%가량만 남아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자이 위시티의 주민이기도 한 정 부장의 공이 컸다. 정 부장은 “분양을 한다는 것은 설득하는 작업”이라며 “컴퓨터나 차가 아니라 집을 사라고 설득해야 하는데 ‘집값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느냐’ ‘당신 같으면 이 아파트를 사겠느냐’고 묻는 고객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나부터 아파트를 계약했다”고 말했다.

‘분양소장도 계약한 아파트’라는 입소문은 났으나 이후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다가도, 주말에 목욕탕을 갔다가도 주민들에게서 민원을 들어야 했다. 특히 부동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불만은 더 쏟아졌다. 미분양을 털어내기 위해 각종 할인과 혜택을 쏟아내자 이 혜택을 받지 못한 초기 계약자들은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고소까지 몇 건 당한 상태다.

부동산투자회사에서 일하며 5년 가까이 외국생활을 하다 지난해 한국에 돌아온 임홍상 과장은 미분양 아파트와 결혼을 맞바꿨다. ‘래미안 한강신도시 2차’ 분양소장을 맡으면서 올해 숙원사업이던 ‘총각 탈출’이 멀어져가고 있다. 30대 중반을 넘긴 나이라 올해는 반드시 배우자를 찾겠다고 목표를 세웠지만 일주일 내내 분양 상황을 챙겨야 하고 특히 주말에 본보기집 방문자가 급증하다 보니 ‘소개팅’ 등은 꿈도 못 꾸는 신세다. 초기 계약률이 70%를 넘어선 데 이어 미분양 탈출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을 뿐이다.

○ 얼어붙은 시장에도 ‘간절함’은 통해

‘강서힐스테이트’ 분양을 맡고 있는 오수아 현대건설 부장은 “제조업이라면 원 플러스 원 마케팅이라도 해볼 텐데 억 단위 아파트는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다”며 “예전에는 상담원들이 동네에 흩어져 1 대 1 대면상담을 하면 반응이라도 좀 있었지만 이제 그마저도 ‘옛말’이 됐다”라고 말했다.

개인적인 인맥을 동원해 보기도 했지만 역시 효과는 없었다. 오 부장은 “5월에 분양소장을 맡고는 지인들에게 ‘분양소장을 맡게 됐으니 주변에 소개해줄 분이 있으면 좀 도와주세요’라고 간절한 문자를 보냈다”라며 “답장은 참 많이 왔는데 효과는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얼어붙은 시장에서 아이디어가 통할 때는 그만큼 기쁨도 크다. 자이 위시티는 2년간 살아보고 계약하라는 ‘애프터 리빙제’를 내걸고 수요자들을 모았다. 래미안 한강신도시 2차는 계약자들의 쉼터인 ‘VIP룸’을 본보기집 안에 꾸며 주민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는 데 성공했다. VIP룸은 임 소장의 아이디어로 탄생했다.

각기 다른 현장에서 고군분투 중인 이들이지만 이 말은 빠뜨리지 않았다.

“시장이 정말 어렵지만 집을 사려는 분들은 분명 있습니다. 간절함과 진심으로 그들에게 다가가야지요.”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미분양 아파트#분양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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