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4사 참여기피로 썰렁… 값 인하효과 못살려
업계, 혼합판매 등 거부감… 전문가 “인센티브 도입해야” 혜택계층 선택지원 주장도
정부가 국내 정유회사들의 경쟁을 유도해 기름값을 떨어뜨리기 위해 설립한 석유 현물시장이 아직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 정유 4사가 시장에 참여하지 않아 휘발유를 비롯한 석유제품 거래가 극히 미미한 것이다.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개장 이후 7거래일간 휘발유 매매는 4건만 이뤄졌다. 하루 평균 0.57건이 체결된 것이다. 거래량 역시 총 12만 L에 그쳤다. 이마저 기존 정유 4사가 아닌 국내 석유제품 공급량의 1.8%가량을 점유한 수입사들이 시장에 내놓은 물량이다.
정부가 석유 현물시장을 개설한 것은 주유소 등이 정유사로부터 석유제품을 실시간으로 사들이면 국내 수급(需給)에 따라 석유제품 가격이 형성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현재 기름값은 정유사가 싱가포르 석유 현물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환율 등을 고려해 결정한다. 국제유가가 오르면 기존에 싸게 들여와 정제한 기름도 가격이 오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윤원철 한양대 교수(경제학)는 “정유사들이 국내 판매량의 일정 부분을 현물거래소를 통해 팔도록 정부가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석유 현물시장뿐 아니라 석유 혼합판매 허용과 알뜰주유소 설립으로 정유사 간의 가격경쟁을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도 쉽지는 않다. 그러자 정부는 정유사들이 정책을 무력화하기 위해 직간접적인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고 의심하는 형편이다.
한국석유공사 관계자는 “정유사들이 알뜰주유소 주변 브랜드 주유소에 기름을 일시적으로 덤핑 판매해 가격 차이를 최소화하고 있다”며 “일부 정유사는 알뜰주유소 전환을 원하는 자가(自家) 주유소에 막대한 배상을 요구해 10여 곳이 전환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석유 혼합판매 역시 공정거래위원회와 지식경제부의 ‘요청’에 정유사들이 수용한 모양새를 띠었지만 삐걱거리는 게 실상이다. 정유업계는 “특정 브랜드를 달고 석유를 혼합 판매하는 것은 코카콜라와 펩시콜라를 섞어 파는 격”이라며 “서로 다른 화학첨가제를 사용해 만든 기름을 섞어 팔다 사고라도 나면 누가 책임을 지느냐”며 정부를 비판했다.
한 달에 평균 20만 원가량을 주유하는 직장인들은 L당 최대 100원이 내려가도 혜택은 월 2만 원 정도에 그치기 때문에 기름값 인하로 혜택을 볼 수 있는 계층을 선택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유류 쿠폰 발행 등을 통해 기름값을 지원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지만 이런 혜택이 필요한 계층을 적절히 걸러내는 것 역시 쉽지 않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