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경기 하강-채권단 인수조건 악화說에 매각실패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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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닉스 또 떠도나?

세계 반도체 시장의 경기 하강과 미국발 경제위기가 올 하반기 국내 최대의 기업 인수합병(M&A)으로 주목받고 있는 하이닉스 매각 전선에 복병으로 등장했다. 반도체 시장 경기가 나빠질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하이닉스 인수와 신규 투자에 큰돈을 들이는 것이 입찰참여 기업으로서는 꺼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내외 금융시장이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치고 있는 점도 인수자금을 마련해야 할 기업 측에서는 부담이 되고 있다.

○ SK “반도체 업황 하락이 하이닉스 인수에 부담”

SK그룹 관계자는 9일 하이닉스 입찰 참여와 관련해 “인수대금 규모가 문제다. 상황에 따라서는 인수 자체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시장에서 거론되는 하이닉스 인수금액은 2조5000억∼3조 원 수준이다. 이 관계자는 “반도체 경기가 다운사이클(downcycle·하강국면)이어서 하이닉스를 인수하더라도 신규 투자를 하기가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반도체 시장의 불황은 사실 새로운 일은 아니다. 이미 일부 국내 증권사는 PC용 D램과 모바일 D램의 가격이 동시에 떨어지면서 하이닉스의 실적이 올 4분기 또는 내년 1분기 중에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결국 최근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이 실물경제에도 충격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경기에 민감한 반도체 가격의 하락폭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이 걱정이라는 것이다.

STX그룹은 “하이닉스 인수 의지에 변함이 없지만 국내 증시 폭락으로 자금 조달 부분에서 우려가 된다”며 “그나마 다행인 점은 우리는 국내보다 낙폭이 크지 않은 해외 증시에 상장된 계열사가 많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 채권단 “구주 인수에 가산점 준다는 건 사실무근”

SK와 STX는 하이닉스 채권단이 채권단 보유 구주(기존 상장주식) 인수에 가산점을 준다는 소문이 돌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채권단은 앞서 인수희망 업체가 채권단이 보유한 지분(구주) 15% 중 절반인 7.5%만 사들이면 추가로 10%가량의 신주를 발행해 인수 이후에 회사 운영·투자자금으로 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전 두 차례에 걸친 매각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채권단이 사실상 인수대금을 줄여준 셈이다. 그러나 인수희망 기업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던 당초 우려와 달리 SK와 STX의 경쟁구도가 형성되자 시장에서는 “채권단이 구주를 높은 가격에, 많이 사겠다고 적어내는 기업에 가산점을 주고 신주 발행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SK와 STX는 이에 대해 모두 “사실이라면 우려스럽다”는 반응이다. 신주 발행을 하지 않으면 인수기업이 신규 투자에 대한 부담을 고스란히 지기 때문이다.

채권단과 하이닉스는 이에 대해 “구주 인수 가산점 부여와 신주 발행 취소는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단 부인했다. 이들은 오히려 “입찰 참가 기업에서 악의적 소문을 흘린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입찰 참여업체가 경기악화로 하이닉스 인수에 부담을 느끼자 자연스레 발을 뺄 구실을 만들기 위해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M&A를 준비 중인 다른 국내기업들도 미국발 경제위기의 파장이 어떻게 전개될지 조심스럽게 관망하고 있다. 대우건설 계열 수(水) 처리업체 대우엔텍과 스페인 담수플랜트업체 이니마 인수를 추진 중인 GS건설은 “당장 자금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중국·동남아 시장에 진출하며 공격적인 M&A를 해온 롯데그룹도 “상황이 상황인 만큼 M&A 문제에서도 완급을 조절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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