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사 으름장에 운용사 속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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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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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펀드 과세방식 변경돼 발생한 추가세액 부담하라”


한 자산운용사 마케팅담당 임원은 최근 펀드를 판매한 은행으로부터 e메일을 받았다. ‘해외펀드 환차익 세금 계산방식이 바뀌어 일부 투자자들이 추가로 세금을 내야 한다’면서 ‘자산운용사에 추징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으나 고객이 세금을 내야 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임원은 며칠 전 다른 대형 은행 2곳으로부터 ‘은행이 고객 대신 낸 세금을 자산운용사에서 처리해 달라’는 내용증명을 받은 터였기에 “머리가 아파왔다”고 전했다.

해외펀드 세금 처리방식이 변경되면서 추가로 내야 하는 세금을 둘러싸고 은행, 증권 등 펀드 판매사들과 자산운용사 사이에 비용 떠넘기기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판매사들은 일단 투자자 대신 세금을 낸 뒤 자산운용사에 분담하라고 으름장을 놓고 자산운용사들은 고객관리와 비용 징수 책임은 판매사에 있다며 항변하고 있다. 판매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자산운용사들은 올해 들어 펀드 면허세가 추가되면서 비용부담은 늘어나는 반면 펀드 투자자는 계속 이탈해 이래저래 울상이다.

○ 최근 해외펀드 세금으로 갈등 도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원-달러 환율은 급등하고 주가는 폭락하면서 해외펀드 투자자들은 대부분 큰 손해를 봤다. 손실을 입은 투자자들에게 환차익에 대한 세금이 부과되자 투자자들이 분개했고 일부는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나섰다. 이에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해외펀드 환차익 산정 기준시점을 환매당일로 변경해 세금을 더 낸 투자자들은 올 1월 말부터 세금을 돌려받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세금을 추가로 내야 하는 투자자들이 생긴 것. 판매사별로 추가 세금규모는 수천만∼10억 원대에 이른다. 판매사들은 “이미 펀드를 해지해 정산이 끝난 데다 계좌까지 폐쇄한 고객에게 세금을 더 내라고 할 수는 없어 판매사들이 대신 납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세금 부담 규모가 억 원대를 넘어서는 판매사들은 자산운용사들에 비용을 추징하겠다고 나섰다. 추가로 걷어야 하는 세금을 사실상 자산운용사들이 징수하라는 얘기와 마찬가지인 셈이다. 한 판매사 관계자는 “운용사로부터 넘겨받은 과세표준을 기초로 투자자별 세금액수를 계산했기 때문에 애초에 운용사가 잘못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운용사들은 반발하고 있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정부에서 세금 산정 기준을 바꿨기 때문에 운용사 책임이 아니다”라며 “더구나 고객으로부터 세금을 징수하는 것은 판매사가 할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채승훈 한국금융투자협회 신탁판매지원실 팀장은 “판매사에서 최선을 다해 고객에게 징수하고 그래도 걷히지 않는 세금은 운용사와 자발적으로 협의해서 처리할 일”이라며 “일괄적인 지침을 내릴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 추가된 비용 부담에 판매사 눈치까지 봐야

자산운용사들은 지난해부터 펀드 환매가 늘면서 속앓이를 하고 있는 데다 올해 들어 이런저런 비용 부담마저 늘어나자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해 2월 자본시장법이 시행되면서 고객들에게 발송하는 운용보고서 제작비용을 펀드의 순자산이 아닌 운용보수에서 부담하도록 규정이 바뀌었다. 비용 부담이 추가된 운용사들의 불만이 커지자 올해부터 e메일로 운용보고서를 보낼 수 있도록 허용됐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개인정보를 보유한 판매사들이 자발적으로 도와주지 않는 한 운용사들이 이를 시행할 방법은 없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운용사는 펀드를 팔아주는 판매사에 저자세일 수밖에 없어 부당한 요구에도 대놓고 거절하거나 정당한 요구를 주장하기도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이 밖에 지난해 5월부터 정부가 지방세법 시행령에 펀드를 면허세 대상에 포함시키면서 올해부터 운용사들은 펀드당 4만5000원의 면허세를 내야 할 처지가 됐다. 서울 중구와 종로구는 이미 면허세를 부과하고 있고 다른 구들도 징수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총 9000여 개의 펀드에서 내는 면허세 총액은 4억여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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