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들먹거리는 대기업 직원에 호통…작은 회사가 ‘겁 없어진’ 비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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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4일 17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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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지원 송호근 대표
와이지원 송호근 대표
"몇 년 전 국내 굴지의 대기업 구매담당 직원이 하도 거들먹거리기에 꾸짖어 돌려보낸 적이 있습니다."

지난달 인천 부평구 청천동의 절삭공구업체 와이지원 본사에서 만난 송호근 대표(58·사진)는 "단 한번도 발주처에 술 사주고 뇌물을 건네면서 영업한 적이 없다"며 단호한 표정으로 이처럼 말했다. 대기업 협력업체에 속한 일부 중견, 중소기업들이 전직 대기업 임직원을 영입해 로비에 나서는 것과 비교하면 와이지원의 영업방식은 적어도 한국에선 별종인 셈이다. 송 대표는 "주변의 절삭공구 업체 대표들이 우리 회사를 보면서 '막힌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다'며 시원해 한다"고 전했다.

1730억 원(2008년 기준)의 매출을 올리는 중견기업이 이렇게 국내 대기업에 꿋꿋할 수 있는 것은 1981년 창사 당시부터 해외시장 개척에 적극 나섰기 때문이다. 송 대표는 창사 4년 만에 미국 시카고 지사를 세운 것을 시작으로 1996년 영국, 1997년 독일, 2001년 중국, 2002년 프랑스·
인도, 2007년 브라질·일본 등에 현지 법인을 잇달아 설립했다. 현재 15개국에 생산 혹은 판매법인을 두고 세계 75개국에 수출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이에 따라 이 회사는 전체 매출의 80%를 해외에서 벌어들이고 있으며 현재 국내 절삭 공구업계 1위, 엔드밀 생산량 세계 1위에 올라 있다. 비록 규모는 대기업에 미치지 못하지만 특정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제패한 '글로벌 강소기업'인 셈이다.

중견기업인으로서 무엇이 가장 힘든지를 묻자 송 대표는 지난해 초에 있었던 일화를 들려줬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창사 이래 첫 적자를 낸 작년 초 와이지원 관계자가 한 국내 신용보증 기관을 찾았다. 기업 신용보증 담당자는 "분석결과 기업여건이 훌륭하다"며 와이지원이 써낸 것보다 2배나 많은 액수를 지원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당일 퇴근 직전 송 대표는 돌연 신용보증이 취소됐다는 보고를 받았다. 오전에 만났던 담당자가 "중소기업을 최우선으로 지원하라는 정부 지침이 있었다"며 한 푼도 보증해 줄 수 없다고 통보한 것.

류광하 경영본부장은 "당시 사장님께 '왜 중소기업을 졸업해서 이 고생을 사서 하시느냐'고 푸념하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와이지원은 2002년 중소기업 졸업으로 3년 유예기간을 거쳐 2005년부터 각종 지원이 끊겼다.

중소기업 범주에 남아있기 위해 분사(分社)까지 시도하는 다른 중견기업들과 달리 지금껏 한 개 회사로 기업규모를 키워온 이유가 문득 궁금했다. 송 대표의 대답은 명쾌했다. "꼼수 부리는 게 싫었습니다. 무엇보다 시장개척 외의 일로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어요. 우리에겐 하루하루 성장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니까요."

인천=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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