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자본, 선진국 빌딩매입 ‘큰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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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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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교직원공제회 등 선진국 랜드마크 빌딩 사들여
“가격 크게 떨어져 투자 적기”… 자산 운용사들도 속속 가세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얼어붙은 국내 자본의 해외부동산 투자가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글로벌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고 금융시장이 안정되면서 유동성을 확보한 국내 기관투자가가 해외부동산 투자를 재개한 것이다.

국내 기관투자가는 한국에 비해 부동산 가격의 회복세가 더딘 선진국의 랜드마크 오피스빌딩을 잇달아 사들이며 해외부동산 시장의 ‘큰손’으로 대접받고 있다. 국내 부동자금을 모아 외국 빌딩에 투자하는 사모펀드(PEF)도 속속 생겨난다. 이들 기관투자가는 몇 년 안에 인플레이션 시대가 올 확률이 높다고 보고 인플레이션 방어용으로 선진국의 실물자산을 선호하고 있다.

○ 국내 자본, 해외부동산 ‘큰손’으로

가장 적극적인 곳은 적립금 274조 원 가운데 27조 원을 해외투자로 운용하는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은 작년 7월 일본 도쿄 오피스빌딩을 시작으로 이달 초 영국 개트윅 공항(지분 12%)까지 총 2조8760억 원을 들여 6건의 해외부동산을 사들였다.

이 가운데 5건이 영국 런던, 호주 시드니, 일본 도쿄의 도심업무지역에 있는 오피스빌딩이다. 특히 작년 11월엔 런던 금융중심가의 HSBC 본사 건물을 1조5000억 원에 손에 넣었다. 국내 자본이 해외부동산을 매입한 사례 중 가장 큰 규모다. 국민연금공단의 김하영 대외협력팀장은 “최근 사들인 오피스빌딩은 임대계약률이 98∼100%로 임대수익만 따져 봐도 연이율이 6%가 넘는다”며 “임대수익만으로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교직원공제회는 작년 말 PEF 형태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도심역세권 개발지역의 1600억 원짜리 오피스빌딩을 매입하는 데 투자했다. 앞서 농협도 같은 지역의 800억 원 규모 빌딩에 투자했다. 사학연금은 현재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일본 도쿄, 오사카 지역의 오피스빌딩 매입을 검토하고 있다. 부동산 및 금융 전문가들은 “이제 국내 연기금은 해외부동산 시장에서 인정받는 세계적인 큰손이 됐다”고 평가했다.

○ 해외부동산 펀드, 작년 1분기 0원→4분기 1325억 원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기존 해외부동산 투자마저 중단하며 잔뜩 움츠려 있던 자산운용사도 올 들어 해외 오피스빌딩 매입 작업에 다시 나서고 있다. 미래에셋맵스는 중국, 브라질의 오피스빌딩을 매입하기 위해 시장조사를 벌이고 있으며 다올자산운용은 호주 영국 싱가포르의 오피스빌딩 매입을 검토하고 있다. 미래에셋맵스 관계자는 “작년까지 해외시장을 아예 쳐다보지도 않던 보험사들도 해외부동산 투자를 재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해외부동산에 투자하는 펀드 발행도 증가하는 추세다. 금융위기 여파로 세계 부동산 시장이 폭락하면서 지난해 1분기 단 한 건도 발행되지 않은 해외부동산 펀드는 3분기 2651억 원, 4분기 1325억 원으로 발행금액이 꾸준히 늘었다. 해외부동산 투자로 흘러나가는 돈도 급증하고 있다.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작년 1분기 875만 달러에 그친 부동산임대 관련 투자는 3분기 1억4183만 달러, 4분기 3억800억 달러로 증가했다.

○ 선진국 직접투자로 선회

금융위기 이전에 국내 자본은 주로 신흥국가의 부동산 개발사업에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나 PEF 형태로 참여하며 해외부동산 투자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제 선진국의 대형 오피스빌딩을 직접 사들이는 방식으로 투자 패턴이 바뀌었다. 국민연금도 해외부동산에 직접 투자한 것은 작년 도쿄 오피스빌딩 매입이 처음이다. 다올자산운용의 김정연 투자운용본부 이사는 “리스크가 큰 신흥시장이나 개발사업보다는 안정성 높은 수익형 부동산인 선진국 오피스빌딩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동산 가격이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된 한국과 달리 선진국은 여전히 가격이 떨어진 상태여서 저평가된 우량 오피스빌딩을 사들이기에 적절한 타이밍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 이사는 “1998년 외환위기 때 가격이 폭락한 한국의 주요 오피스빌딩을 외국 자본이 헐값에 사들이며 시세차익을 얻었던 전략을 이제는 국내 자본이 쓰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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