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잠하던 SW시장, 1인 개발자들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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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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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소프트 파워’ 기지개… IT산업 지각변동

하드웨어 비해 기형적으로 위축된 시장에
골방의 컴퓨터 천재들 앞다퉈 뛰어들어
베이비폰-지하철알리미 등 히트작 내놔
대기업들도 스마트폰용 콘텐츠 개발 박차

‘지하철에서 자는 나를 누군가 깨워줬으면….’

지난해 여름 지하철 안에서 꾸벅꾸벅 졸던 이민석 씨(27)는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치는 실수를 거듭했다. 학교 시험 기간이라 잠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이동할 때 짬짬이 잠을 잘 수 있도록 자신을 깨워줄 무엇인가가 절실했다. 이 씨는 수도권의 500여 개 지하철역을 오가며 위치정보를 파악한 끝에 3개월 만에 ‘지하철 알리미’라는 스마트폰용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씨의 프로그램은 지난해 말 SK텔레콤의 첫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공모전’에서 1등을 차지했다. 지하철에서 떠올린 아이디어로 1월 말 현재 39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개발자 혼자 수익을 만들어 내는 ‘1인 기업’인 셈이다.

회사원 유재현 씨는 어린 딸의 장난감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딸이 새 장난감을 사줘도 금방 싫증을 냈기 때문. 그러다가 휴대전화만 있으면 딸이 계속 새로운 놀이를 즐길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기 시작했다. 유 씨는 이렇게 만든 ‘베이비폰’ 콘텐츠로 5000만 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 1인 기업의 재발견

잠잠했던 소프트웨어(SW) 시장에서 최근 1인 개발자들이 부상하고 있다. 이들의 활약은 한국 SW 시장의 제2막을 열 지각변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국의 정보기술(IT) 산업은 흔히 덩치는 크지만 두뇌는 상대적으로 작은 ‘공룡’에 비유된다. 반도체와 휴대전화, 디지털TV 등 하드웨어는 세계 1위 상품이 수두룩할 정도로 크게 성장했는데, ‘두뇌’라 할 만한 소프트웨어 산업은 기형적으로 작았던 것.

하지만 그것도 조만간 옛 얘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들어 대기업부터 골방의 ‘1인 컴퓨터 천재’들까지 앞 다퉈 SW 산업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세계시장의 변방에 있었던 한국 SW 산업의 반격이 조용히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SW 산업의 지각변동은 시장 규모에서 감지된다. 국내 SW 시장 규모는 세계적인 금융위기에도 최근 2년간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07년 163억 달러였던 국내 SW 시장은 2009년 186억 달러로 2년 만에 14.1% 증가했다. 세계적 금융위기를 고려하면 상당히 고무적인 수치다. 이에 비해 세계 SW 시장 규모는 2007년 9730억 달러에서 2009년 1조89억 달러로 3.7% 상승하는 데 그쳤다.

SW 인력 시장도 부활하고 있다. 잡코리아에 따르면 SW 인력채용 공고건수는 지난해 1월 1015건에서 1년 만인 올해 1월 2016건으로 2배 가까이 뛰었다. 베이비폰 개발자 유재현 씨는 “2000년대 초에는 웹 관련 SW가 시장을 이끌었다면 10년이 지난 2010년대에는 모바일 SW 관련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 SW 사업에 주목하는 전자업계

대기업들도 SW 인력 충원에 나섰다. 특히 스마트폰의 인기를 좌우할 각종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신종균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사장)은 최근 첫 안드로이드폰을 내놓는 자리에서 “2010년의 가장 큰 변화는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콘텐츠 애플리케이션 등 SW도 같이 강화해야 하드웨어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LG전자의 남용 부회장도 “비상경영 기조는 유지하더라도 인력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중심으로 지난해(1000명 선)보다 많이 채용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특히 LG전자는 지난해 신설된 스마트폰사업부의 연구개발(R&D) 인력을 연말까지 전체 휴대전화 R&D 인력의 30%로 늘릴 예정이다.

인터넷 관련 기업들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은 지난달 말 SW 기업 ‘이스트소프트’와 모바일 등 신규 사업 개발을 위해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안철수연구소도 올해 초 정보보안 기업에서 ‘종합 SW 기업’으로의 변신을 선언했다.

○ 남아있는 한계

스마트폰이 SW 산업을 이끌고 있지만 아직 걸림돌도 있다. 예를 들어 하나은행은 스마트폰, 아이폰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뱅킹 시스템을 만들었지만 금융감독 당국이 보안 위험성을 지적하면서 주춤하고 있다. 피해보상 책임이 있는 회사와 피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소비자가 모두 받아들일 만한 시스템을 만들었지만 정부가 ‘보안 문제’를 경고하면서 반쪽 서비스에 그칠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인터넷서점 알라딘도 최근 스마트폰용 결제 시스템을 선보였지만 신용카드 회사들이 금융 당국의 가이드라인을 거론하며 보안 문제를 내세워 결제 서비스를 거부하고 있다.

정부가 장기적인 시각으로 SW 육성책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SW 업계 관계자는 “미국에서는 정부가 보유한 각종 데이터베이스를 기업과 시민들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개한다”며 “미국처럼 관공서의 위치나 도서관의 장서 정보 등을 공개해 이를 이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민간에서 개발할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좋겠다”라고 말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이홍민 인턴기자 연세대 사회학과 3학년


■ 정부 IT인력양성 개편안

[1] 석-박사급 지원 확대- 멘터-연수-장학금 혜택
[2] 산학협력 교수 우대- 업적 평가에 가산점 부여
[3] 파격적 연구비 제공- 2개 대학에 해마다 25억씩

정부가 부족한 소프트웨어 분야 고급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석·박사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산학(産學) 협력을 위한 각종 대책을 마련했다. 지식경제부는 수요 맞춤형 고급인력 양성 등의 내용을 담은 ‘IT인력양성 중기 개편안’을 8일 발표했다.

지경부는 고급인력이 부족한 소프트웨어 고용시장의 현실을 고려해 석·박사급 인력 공급을 확대하기 위해 ‘소프트웨어 창의 연구과정’ ‘고용계약형 석사과정’ 등을 도입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에 따르면 2013년까지 소프트웨어 분야에 석·박사급 고급 인력은 9973명이 부족하고, 학사는 1041명이 남을 것으로 전망됐다.

소프트웨어 창의 연구과정은 대학원생이 제안한 프로젝트를 기업이 원할 경우 연구비를 지원하고 멘터와 연수 등도 제공하는 형식이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올해 이 사업에 연구비를 지원하고, 본사 연수 등을 실시하기로 했다. 고용계약형 석사과정은 기업이 대학원 입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고, 학생은 해당 기업의 맞춤형 교육과정을 이수한 뒤 3년간 근무하도록 하는 제도다. 이를 통해 고급인력이 상대적으로 덜 선호하는 중소기업에 고급인력의 공급이 촉진될 것으로 지경부는 기대하고 있다.

하드웨어 분야를 포함한 정보기술(IT) 인력 양성을 위해 정부는 2013년까지 4011억 원을 투입해서 기업 맞춤형 기초인력 3만5000명, IT 고급인력 4000명, 융합고급인력 2000명을 양성하기로 했다. 특히 부족한 석·박사 인력을 확충하기 위해 대학원 지원사업의 비중을 지난해 49%에서 2013년 67%까지 높이기로 했다.

또 교수들의 인력양성사업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산학협력 활동을 한 교수에게는 업적을 평가할 때 가산점을 부여하고 대학생이 기업에서 인턴 경험을 쌓는 ‘IT멘터링’ 사업 대상을 기존 3000명에서 9000명으로 확대한다.

이 밖에 미국의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 같은 인재양성 사업을 위해 내년까지 2개 대학에 연간 25억 원씩 10년간 연구비를 지원하고, 융합 분야 인력 양성을 위해 ‘IT융합 고급인력과정’을 올해 신설할 계획이다.

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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