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움켜쥐고 안내놔 ‘오버슈팅’… 일부선 ‘환율 상투론’

  • 입력 2008년 10월 10일 02시 54분


■ 서울 외환시장 요동… 이유와 전망

“8월 국제수지 흑자인데도 경상적자에만 비이성적 반응”

외환시장 왜소… 외풍 타기쉽고 외국인 증시이탈도 원인

“환율 급락 가능성 높아… 기업 매도 늦추면 부메랑 될 것”

삼성경제硏 “주요국 통화와 비교하면 1002원이 적정환율”

서울 외환시장이 요동을 치고 있다. 달러당 원화 환율은 9일 하루에만 113원 오르내리는 진폭을 보였다.

외환 전문가들은 최근 원화의 추락이 국내 경제 상황 및 주요국 통화와 비교해볼 때 지나치다고 지적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9일 ‘균형환율이 1002원’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할 정도다. 이 추정이 맞는다면 현재의 달러 환율은 37. 6%나 오버슈팅된 셈이다.

서울 외환시장은 왜 이런 ‘냄비시장’이 됐을까.

○ 거래 줄어 조그만 충격에도 취약

원화가 약세를 보일 이유는 있다. 올해 11년 만에 약 100억 달러의 경상수지 적자가 예상되는 데다 외국인이 올해 33조 원가량 주식을 순매도했다. 또 지난해 중순까지 원화가치가 지나치게 빨리 오른 데 따른 반작용으로 조정 압력도 받고 있다.

하지만 원-달러 환율이 4거래일 만에 208원 폭등하는 상황은 이런 거시경제적인 요인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최근 외환시장은 거래가 평소의 3분의 2 이하로 위축된 가운데 달러 팔자 주문은 없고 사자 주문에 추격 매수세가 따라 붙어 환율을 끌어올리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은 “7일 외환시장 실제 수요는 30억 달러가 채 안 될 정도로 극히 얇아졌다”고 말했다.

9일에도 거래가 60억 달러 규모로 줄어든 가운데 장 초반 투신사의 매수 주문이 나오자 1485원까지 급등하기도 했다.

○ 시장 불안을 틈탄 ‘달러 사재기’

올해 1∼8월 국제수지는 182억1780만 달러 적자다. 시장에서 그만큼의 달러가 부족했던 셈. 하지만 정부가 환율 상승을 막기 위해 올해 외환시장에 200억∼300억 달러를 풀었다. 이론상으로는 달러 수급에 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도 달러 품귀는 여전하다.

한 외국계 은행 간부는 “8월에 경상수지가 적자였지만 자본수지는 흑자로 돌아서 전체 국제수지는 흑자였다”며 “하지만 시장은 경상수지 적자에만 반응하는 비이성적인 군중 심리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외환당국은 누군가 환율 추가 상승을 기대하면서 달러를 움켜쥐고 있다고 보고 있다. 최 국장은 “외화 수급상 향후 환율이 급락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달러를 매점하고 있는 개인이나 기업은 결국 피해를 볼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 자본시장에 비해 규모 작아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1∼7월 외국인 주식보유 규모 대비 외환거래량의 비율이 낮은 태국 밧화와 한국 원화가 인도 루피화, 필리핀 페소화보다 더 많이 평가 절하된 것으로 나타났다.

박해식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외국인이 주식을 팔고 나갈 때 이를 흡수할 수 있는 외환 거래량이 충분하지 않아 환율이 크게 오를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달러 공급이 외국계은행 국내지점, 외국인 투자가, 수출업체 등에 집중돼 있다는 점도 환율 불안 요인이다.

○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현상

자본시장 자유화로 규제는 풀리고 외환거래는 느는데 외환 인프라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투기적 요소가 강한 역외 차액선물환(NDF) 거래가 대표적이다.

1999년 국내 은행의 역외 NDF 거래가 허용되면서 거래 규모는 올해에 2005년의 4배 가까이로 늘었다. 홍콩 싱가포르 등에서 24시간 거래되는 역외 NDF 시장은 적은 증거금을 건 뒤 선물환 계약을 하고 나중에 차액만 결제하는 구조여서 환투기 세력에 악용되곤 한다. 역외 NDF 시장의 움직임이 다음 날 서울 외환시장에 곧바로 반영돼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것.

외환 당국에 대한 불신도 시장의 변동성을 키운다. 한 국책은행 전직 외환딜러 팀장은 “정부 당국자가 은행이 달러 자산을 팔아야 한다는 식으로 시장의 불안감을 키우는 신호를 보내거나 시장에 한 박자씩 늦게 개입해 불신만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삼성전자 대규모 달러 매각

환율 상승세 꺾는데 큰 영향▼

삼성전자가 제품 수출 대금으로 받은 달러 등 외화(外貨) 가운데 일부를 9일 외환시장에서 매각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날 “외환시장에서 삼성전자가 외화를 매각했다는 소문이 나돈다고 해서 관련 부서에 확인한 결과 실제로 달러 등 외화를 매각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의 외화 매각은 정부의 시장 개입과 함께 이날 한때 급등했던 원-달러 환율이 하락세로 돌아서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날 외환시장에서는 삼성전자의 외화 매각 규모가 10억 달러(약 1조4000억 원)에 이른다는 소문이 나돌았지만 삼성전자 측은 “그보다 적은 걸로 안다. 정확한 매각 금액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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