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 동네기업]<2>미타카코키의 나카무라 회장

  • 입력 2008년 6월 27일 03시 12분


나카무라 요시카즈 미타카코키 회장이 본사 겸 공장에서 뇌수술용 전자현미경 장치의 작동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도쿄=천광암 기자
나카무라 요시카즈 미타카코키 회장이 본사 겸 공장에서 뇌수술용 전자현미경 장치의 작동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도쿄=천광암 기자
까막눈 匠人… 자 2개로 계산 척척

대기업도 두손 든 ‘광학기기 최고봉’

《1983년에 있었던 일이다.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의 전신인 도다이우주과학연구소는 미국 우주왕복선에 탑재할 특수카메라의 제작을 일본 산업계에 의뢰했다. 영하 150도의 우주 공간에서 원활하게 작동하는 카메라를 만드는 것은 당시 일본 기업들이 처음으로 도전해 보는 고난도 프로젝트였다. ‘도전장’을 내민 기업은 3곳이었다. 일본 최고의 항공우주업체인 M사와 일본 최대의 전자업체인 H사, 나머지 한 곳은 미타카코키(三鷹光器)라는 무명의 마치코바(町工場·동네공장)였다. 누가 봐도 결과가 뻔한 승부였다. 하지만 1년간에 걸쳐 엄격한 품질테스트를 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예상과는 정반대로 미타카코키의 손을 들어 줬다. H사와 M사의 제품은 영하 120도에서 작동이 멈췄지만 미타카코키의 제품은 영하 160도에서도 멀쩡하게 움직였던 것. 아직도 회자되는 이 ‘산업무용담’의 주인공인 미타카코키를 찾아간 것은 이달 10일.》

○ “나 글자 못 읽어”

도쿄(東京) 도 미타카(三鷹) 시의 주택가에 자리 잡은 미타카코키의 현관에 들어서자 맨 먼저 벽에 걸린 사진 한 장이 눈길을 붙잡았다.

2006년 4월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이곳을 방문해 공장 내부를 견학하는 모습이었다. 종업원이 50명 안팎에 불과한 미타카코키가 일본의 어떤 대기업보다 소중한 ‘국보급’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은 이 한 장의 사진이 충분히 설명하고도 남았다.

창업자 나카무라 요시카즈(中村義一·77) 회장이 기자를 맞은 곳은 특수카메라 견본 등이 전시된 2층 회의실이었다.

인사가 끝나자마자 미리 조사해둔 이 회사 관련 서적, 잡지, 신문기사 등을 나카무라 회장 앞에 죽 늘어놨다. 사전 취재를 충분히 했으니 기초적인 설명을 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달라는 ‘주문’이었다.

나카무라 회장은 책과 잡지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곧바로 말문을 열었다.

“이런 건 나에게 보여줘도 소용없어요. 학교를 변변히 다닌 적이 없어서 글을 잘 못 읽거든요.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도 제대로 못하기 때문에 필요한 계산은 줄곧 자(척·尺) 2개를 이용해서 해왔어요.”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였다.

1998년에는 ‘X선 도플러망원경’을 만들어 세계에서 처음으로 태양의 코로나를 고해상도로 관측했고, 현재 달 주위를 돌고 있는 일본 우주탐사선 ‘가구야’의 관측기기를 설계 제작한 나카무라 회장이 사칙연산조차 제대로 못한다는 게 선뜻 믿어질 리가 없었다.

○ “망원경도 현미경도 원리는 하나”

사전 취재의 부실함은 이어지는 그의 설명 속에서 다시 드러났다.

나카무라 회장은 “외부에서는 대개 미타카코키를 우주 관측기기 제조업체로 알고 있지만 현재 주력제품은 뇌수술용 현미경”이라면서 “미국에서 쓰이는 뇌수술용 현미경의 70%가 우리 제품”이라고 밝혔다.

천체망원경 제작을 전문으로 했던 미타카코키가 의료분야에 뛰어든 것은 1980년대 후반이라고 했다. 계기는 이렇다.

당시 뇌수술용 현미경을 만드는 제조업체들은 한 가지 기술적인 난제 때문에 골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난제란 외과 의사들이 수술 도중 접안렌즈에서 눈을 떼도 초점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는 문제였다. 초점을 다시 맞추는 데 필요한 시간을 없앨 수 있다면 수술 과정의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었지만 제조업체들 앞에는 좀처럼 뛰어넘기 힘든 기술 장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제일 먼저 ‘구세주’를 발견한 곳은 독일의 세계적인 광학기기 제조업체 라이카였다.

시행착오를 거듭한 라이카의 담당자는 나카무라 회장을 찾아와 이 난제를 풀 수 있는지 문의했다.

나카무라 회장은 간단히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망원경의 원리를 응용한 해법이 떠올라 있었다.

이를 계기로 미타카코키는 라이카와 함께 뇌수술용 현미경 생산에 뛰어들었다. 라이카가 렌즈 공급과 마케팅을 맡고 미타카코키가 설계와 제조를 담당하는 방식으로 역할 분담을 했다.

이후 미타카코키는 이 분야의 획기적인 특허와 신제품을 줄줄이 쏟아내고 있다.

○ “바보야, 문제는 아이디어야”

자 2개가 ‘주무기’인 나카무라 회장이 수학박사와 공학박사가 즐비한 대기업들을 줄줄이 무릎 꿇린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한마디로 아이디어”라고 설명했다.

“우리 회사가 개발한 우주왕복선 탑재용 특수카메라가 영하 160도에서도 작동할 수 있었던 것은 작은 톱니바퀴 덕분입니다. 그 톱니바퀴는 에도(江戶)시대 일본에서 이미 사용되던 것입니다. 창의성과 응용력이 없으면 제 아무리 첨단공학 분야 박사라도 봉건시대 직인(職人)만 못한 거예요.”

그가 아이디어 못지않게 중시하는 것은 손재주다.

예컨대 나카무라 회장은 신입사원 채용시험을 볼 때 반드시 점심을 함께 먹는다. 밥상에 오르는 메뉴는 늘 가시 많은 생선이다.

나카무라 회장은 “젓가락으로 생선 가시를 발라내는 모습을 보면 첨단제품을 만들 재주가 있는지 없는지 금방 알 수 있다”면서 “기술로 먹고사는 우리 회사에 실용성 없는 지식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운 ‘전문바보’는 필요 없다”고 말했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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