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토탈의 ‘재택근무 실험’ 1년 돌아보니…

  • 입력 2008년 6월 24일 03시 01분


《23일 서울 금천구 시흥동의 한 아파트. 석유화학업체인 삼성토탈 영업1팀에 근무하는 김영신 차장은 이날 오전 6시에 눈을 떴다. 조간신문을 훑어본 김 차장은 오전 7시 반 노트북을 열고 사내(社內) 메신저에 접속했다. 6명 팀원이 모인 메신저 회의에서 그는 전날 업무 처리 결과와 당일 거래처 방문 일정 등을 보고했다. 아침을 여유 있게 챙겨 먹은 김 차장은 오전 9시 집을 나와 거래처로 향했다. 집에서 먼 거래처부터 시작해서 하루 평균 4곳을 방문한다. 귀가 시간을 염두에 둔 방문 일정이다. 김 차장은 오후 6시 반 귀가해, 집 근처 헬스장에서 운동을 한다. 다음 달부터는 저녁 시간대에 운동 대신 영어회화 공부를 할 계획이다.》

삼성토탈이 지난해 5월 영업직 사원 26명을 대상으로 ‘재택(在宅)근무제’를 실시한 지 1년이 넘었다.

대기업 규모의 제조업체가 정규직 사원을 상대로 처음 실시한 재택근무제의 ‘1년 성적표’를 들여다봤다.

○ ‘고객이 아니라 가족 같은 느낌’

재택근무로 인한 가장 큰 변화는 거래처 방문 횟수가 종전 1, 2건에서 3∼5건으로 늘었다는 점이다. 서울 중구 태평로 본사나 영업본부가 위치한 충남 대산공장에 매일 출근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김 차장은 “워낙 자주 거래처를 방문하다 보니 그 회사 직원들의 대소사까지 상세히 파악하고 있다”며 “주로 시간을 보내는 곳이 거래처이다 보니 삼성토탈이 아니라 거래처가 직장 같은 착각이 들 정도”라고 했다.

거래처와의 연구개발(R&D) 협력도 늘어났다.

특수영업팀 오원석 과장은 “본사 출퇴근을 위해 낭비하던 시간을 거래처와 R&D 협력 및 제품 테스트에 쏟는다”며 “그만큼 거래처 요구를 경쟁사보다 빨리 파악하고 제품 납기도 단축시켰다”고 전했다.

물론 불편한 점도 있다.

한 사원은 “노트북과 휴대전화를 들고 24시간 근무하기 때문에 가끔 밤늦게 혹은 일요일에도 고객이 전화를 한다”며 “집에서 회사 업무를 보다가 가족에게 눈총받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귀띔했다.

○ ‘자율의 힘!’

처음에는 재택근무제에 대한 반대가 많았다. 영업사원 관리가 힘들다는 부정적인 의견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고홍식 삼성토탈 사장은 “재택근무는 창조경영의 하나로 영업성과가 올라갈 것”이라며 이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최고경영자(CEO)가 ‘자율의 힘’을 강조하자, 실무 부서는 반대 논리를 내세우기보다 성공하기 위한 후방 지원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회사는 재고나 주문현황, 배송상태 등을 온라인에서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평가체계도 근태(勤怠·부지런함과 게으름) 대신 성과를 중요하게 반영하도록 바꿨다.

현재 삼성토탈은 1년의 실험을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재택근무 후 거래처가 10% 정도 늘었고, 거래처와의 유대관계도 훨씬 끈끈해졌다고 판단하고 있다. 또 영업사원들의 책상을 없애면서 접견실을 늘리는 등 본사 사무실 공간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삼성토탈은 이제 ‘재택근무 2기’를 준비하고 있다.

회사는 이달 초 ‘제품’ 중심에서 ‘지역’ 중심으로 팀을 재편했다. 사원들의 업무 동선(動線)을 자신의 집 주위로 한정해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쓰게끔 하기 위한 배려다. 또 영업사원을 대상으로 도입했던 재택근무제를 다른 부서로 확대할 방침이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