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값의 경제학

  • 입력 2008년 6월 2일 02시 57분


백혈병 약 ‘스프라이셀’ 한알 5만5000원 확정 계기로 본 소비자價 결정 과정

《가격을 놓고 정부와 제약사가 1년 넘게 줄다리기해 온 백혈병 치료제 ‘스프라이셀’의 가격이 5만5000원으로 지난달 29일 최종 결정됐다. 이번 스프라이셀 가격 결정은 정부가 의약품에 대한 보험 적용 방식을 변경해 제약사들이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이뤄진 것이어서 제약업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스프라이셀 사례를 통해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약값이 어떤 과정을 거쳐 결정되는지 살펴봤다. 》

심평원 경제성 심사후 제약사 - 보험공단 협상

보험등재 여부 - 약값 줄다리기 해넘기기 일쑤

제약사 “제때 출시 못해”… 공단 “재정안정 우선”

○ 엄격해진 심사와 평가

정부는 2006년 12월 건강보험의 과도한 약제비 지출 구조 개선을 위해 약의 보험 적용 방식을 비용 대비 효능이 높은 의약품만 보험 혜택을 주는 ‘선별등재 방식(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으로 바꿨다. 과거에는 신청만 하면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보험 적용을 받았다.

스프라이셀은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에 내성이 생긴 환자들을 위한 치료제다. BMS는 미국에서 2006년 8월부터 알(70mg)당 84달러(8만7108원)에 판매했다.

한국BMS는 지난해 3월 알(70mg)당 6만9135원으로 가격을 책정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건강보험 등재 신청을 했다.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면 소비자 가격이 3∼10배로 비싸져 소비자 선택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심평원은 보험 등재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경제성 평가’를 실시했다. 과거에는 없던 새로운 절차다.

암전문가 17명으로 암질환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스프라이셀이 생존을 위협할 정도의 심각한 질병을 치료하는지 △대체 가능한 다른 약이 없는지 △환자의 치료에 반드시 필요한지 등을 심사했다.

이어 의사, 약사, 경제전문가 등 18명으로 구성된 약제급여평가위원회는 필수의약품 여부와 한국BMS가 제출한 가격의 타당성 여부를 따졌다. 스프라이셀은 두 차례 심사를 모두 통과했다. 가격은 6만9135원으로 인정받았고, ‘필수의약품’ 지위도 획득했다.

○ 달라진 제도… 약인가, 독인가

심평원 심사를 통과하면 국민건강보험공단(보험공단)과의 가격 협상 절차가 기다린다. 공단은 최대한 가격을 낮춰야 하고 제약사는 최대한 높은 가격을 받아야 한다.

양측의 줄다리기는 성과 없이 끝났다. 협상이 무산되면 필수의약품이 아니면 바로 보험 등재는 없었던 일이 된다. 하지만 스프라이셀처럼 필수의약품은 마지막 단계로 복지부 약제급여조정위원회가 약값을 최종적으로 심사하게 된다.

1년여의 협상이 결렬되자 조정위는 4월 스프라이셀 1알의 가격을 5만5000원으로 최종 결정했고 한국BMS 측도 결국 이를 받아들였다.

스프라이셀은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게 되고, 소비자는 약값의 10%인 5500원만 부담하면 된다. 통상 암질환은 소비자가 10%를 부담하고, 일반 질병은 보통 30%를 지불한다.

새로운 보험 등재 방식에 대해 제약사들은 “달라진 제도로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투자해 식품의약품안전청(KFDA)의 승인을 받고도 시장에 약을 출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반발하고 있다. 지금도 한미약품의 고지혈증 치료제 ‘심바스트씨알정’과 한국얀센의 마약성 진통제 ‘저니스타서방정’ 등이 정부와 약값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 안정을 위해 현행 제도를 바꿀 계획이 없다고 밝히고 있어 양측 간 공방은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스프라이셀 가격 결정 과정
시기절차
2007년 1월-식품의약품안전청 시판 허가
3월-한국BMS,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건강보험 등재 신청(1알에 6만9135원)
10월-약제급여평가위원회, 심의위원회 등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 통과
2007년 11월∼2008년 1월-건강보험공단과 약가 협상 -공단, 1알에 5만5000원 최종 제시 -한국BMS, 공단 제안 거부. 협상 결렬
2008년 3∼5월-보건복지부 약제급여조정위원회 심의 -조정위, 1알에 5만5000원으로 최종 결정
5월 29일-한국BMS, 약제급여조정위 결정 수용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