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기홍]뼛조각에 당한 美, ‘통뼈 역공’ 준비

  • 입력 2007년 3월 19일 03시 00분


미국산 쇠고기 뼛조각 논란이 최근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미 행정부와 의회는 이제 뼛조각에 관심을 두지 않는 분위기다.

워싱턴의 통상 소식통들은 “미국의 요구 수준이 높아져 이제는 아예 뼈를 포함한 쇠고기의 전면 수입을 요구하겠다는 태세”라고 전했다.

6일 한국이 “뼛조각이 들어 있는 상자만 반송하겠다”는 양보안을 냈지만 미국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미국은 5월 국제수역기구 회의에서 ‘광우병 위험이 통제되는 나라’로 판정받으면 한국이 더는 뼈 없는 쇠고기를 고집할 명분이 없어진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손톱만 한 뼛조각을 문제 삼아 전량을 반송한 한국의 조치가 국제 관행이나 상식에 비춰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점을 간파한 미국 측이 강하게 역공을 취하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자칫 ‘혹 떼려다 혹 붙이는 꼴’이 될 수 있다는 걱정이었다.

뼛조각 파동은 △뇌, 척수 등을 제외한 일반 뼈는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이 아니라는 점 △전수검사는 무역 관례가 아니라는 점에서 한국 측이 논리적으로 군색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뼛조각 불가를 외치는 농림부나 진보단체들을 기자는 한편으론 이해한다. 그것이 그들이 서 있는 자리니까. 하지만 호주산은 되고 미국산만은 죽어도 싫다면 차라리 수입을 정면 거부하고 공산품이나 다른 부문에서 그만큼 손해를 감수하겠다고 나서는 게 당당한 자세가 아닐까.

더 한심한 것은 청와대와 총리실의 조율 기능 상실, 그리고 통상 담당 관리들의 눈치 보기다. 최근 워싱턴을 방문한 주요 정치인이나 고위 외교관들 가운데 농림부의 태도가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비보도를 전제로 한 사석에서만 그렇게 말한다. “정식으로 인터뷰를 하자”고 하면 모두 꼬리를 내린다.

지난달 워싱턴을 방문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도 “전문가들의 협의에서 잘 풀리지 않겠느냐”고 어물쩍 넘어갔다.

“뼛조각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안 된다”는 한국 측의 논리는 “피는 한 방울도 흘리지 말고 살만 베어 가라”는 ‘베니스의 상인’의 판결에 비유된다. 셰익스피어의 희극에선 명판결이었지만 외교 현장에선 억지로 여겨진다. 뼛조각 파동이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비극의 결말로 이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기홍 워싱턴 특파원 sechep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