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비디오 게임시장의 다윗 ‘판타그램’

  • 입력 2005년 11월 3일 03시 06분


《지난해 말 한국의 비디오 게임기용 게임 프로그램이 북미지역 판매순위 1위에 오르는 ‘이변’이 일어났다. 주인공은 판타그램의 ‘킹덤 언더 파이어: 크루세이더스’. 그동안 한국은 온라인 게임 분야에서만 주목받았다. 한국에서는 불법복제가 심해 이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온라인 게임 개발에만 주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온라인 게임을 비롯한 PC게임 시장은 세계 게임 시장의 30%를 넘지 못한다. 70% 이상은 비디오 게임기용 시장이며 미국의 EA, 일본의 코나미 등 대형 게임업체가 주름잡고 있다. 판타그램은 국내 게임업체 중 처음으로 외국 대형 게임회사와의 경쟁을 뚫고 살아남았다.》

○ 골리앗과 싸워 이긴 다윗

판타그램의 직원은 20명. 세계 시장에서 함께 경쟁하는 미국과 일본의 유명 게임회사 직원이 수백 명, 수천 명인 것과 비교하면 매우 작은 규모다. 이 작은 회사를 알아본 건 국내에서가 아니라 해외에서였다. 2002년 말 수천 억 원을 투자해 가며 ‘엑스박스’ 게임기를 만들었던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는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는 회사를 찾고 있었다.

판타그램은 그 기준에 들어맞았다. 이 회사는 이미 2000년 미국에서 컴퓨터용 게임 ‘킹덤 언더 파이어’를 선보여 검증을 받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속편 크루세이더스는 45만 장 이상 판매되며 2004년 엑스박스 게임 가운데 2번째로 많은 수익을 거뒀다. 1위는 1000만 장이 넘는 판매를 올린 게임 ‘헤일로’였지만 개발비와 마케팅 비용에 40억 원을 투자한 크루세이더스는 ‘남는 장사’였던 셈이다.

크루세이더스가 성공한 원인은 서로 다른 종류의 게임을 하나로 만드는 발상의 전환.

크루세이더스는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전략 위주의 게임과 격투를 벌이는 액션 게임을 하나로 합친 새로운 형태의 게임이었다.

크루세이더스 성공에 고무된 MS는 현재 160억 원 이상의 제작비를 들여 차세대 게임기인 ‘엑스박스360’용 게임 ‘나인티나인 나이츠(N3)’를 판타그램과 함께 만들고 있다.

○ 게임에 모든 걸 걸었다

이상윤(34·사진) 판타그램 사장은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88년 8비트 컴퓨터용 게임 ‘대마성’을 친구들과 밤새워 만들며 게임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컴퓨터 게임은 음침한 ‘오락실’에서나 즐기는 걸로 받아들여졌다. 게임을 만드는 건 ‘괴짜’의 행동이었다. 그도 다른 친구들처럼 대학 진학을 선택하고 한양대 수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 결국 1994년 군복무를 마치고 친구 5명과 함께 게임회사를 만들었다. 판타그램의 시작이었다.

판타그램은 불법복제가 성행하고 게임 인구도 적은 국내 시장 대신 미국과 일본 등 게임 선진국 시장을 직접 노렸다. 그 결과 1996년 국내 최초로 일본에 수출된 게임 ‘지클런트’를 만들었고 2000년 미국에 진출할 수 있었다.

이 사장은 “한국이 온라인 게임의 종주국으로 인정받는 건 잠시에 불과하고 곧 외국 업체와의 경쟁이 심화될 것”이라며 “해외 선두 업체와 겨뤄 이길 수 있는 기술 없이 국내에서 벌이는 경쟁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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