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을 꽂아라…‘재미+디자인’ 감성마케팅

  • 입력 2005년 9월 22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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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카고에 있는 루터교 소아종합병원은 7월 ‘가상환경 체험 시스템’을 갖춘 독특한 방사선 진료실을 열었다.

어린이 환자가 컴퓨터단층촬영(CT)을 받는 동안 벽면과 천장에는 캐릭터 동영상이 비치고, 음악과 조명이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모형 CT 장치로 장난감 내부를 찍는 놀이도 해 보게 한다.

환자의 여린 감성(感性)까지 생각한 이 시스템의 모든 검사는 15분이면 끝난다.

인간의 감성이 소비를 결정짓는 사례가 늘고 있다. 패션산업에 이어 전자 의료서비스 주택 외식 등 거의 모든 산업분야로 ‘감성 마케팅’이 확산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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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이 거의 비슷해져 기술만으로는 차별화가 어렵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 ‘이거 내 스타일? 아니면 안 사!’

“브랜드를 보고 살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내 스타일에 맞는 것을 선택한다.”(회사원 김주희 씨·33)

김 씨는 “루이비통과 샤넬 등 명품 브랜드의 위세가 과거만 못하다”며 “브랜드로 자신의 능력이나 지위를 과시하기보다는 ‘나만의 감성’을 표현할 수 있는 제품을 고른다”고 말했다.

이런 감성소비는 세대도 뛰어넘는다.

귀금속상을 운영하는 김성희(55) 씨는 2년 전부터 롯데백화점의 20대 여성복 매장 ‘타스타스’를 자주 찾는다.

김 씨는 “젊고 활동적이어서 좋다”며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옷을 사 입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다”고 귀띔했다.

○ 감성은 새 시장을 창출

‘바람피우지 마.’ ‘사랑해.’ ‘넌 내 거.’

지난해 속옷업체 ‘좋은 사람들’은 다른 업체들이 ‘가슴을 모아준다’, ‘배가 들어가 보인다’며 속옷의 기능성을 강조할 때 ‘나만의 속옷’이라는 감성으로 소비자를 자극했다.

이 업체가 내놓은 속옷 브랜드 ‘예스’는 팬티 등 속옷에 ‘사랑해’ 등 원하는 문구를 새겨 넣을 수 있다.

기능 위주의 상품에 감성을 포장하면서 지난해 다른 속옷업체들이 마이너스 성장을 할 때 이 업체는 매출이 16%나 늘었다.

요구르트 아이스크림 가게인 ‘레드망고’는 참살이(웰빙)와 감성소비 추세를 제대로 포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객에게 토핑(아이스크림에 얹어 먹는 과자류)의 선택권을 줘 만들어 먹는 ‘재미’를 선사했다. 맛있는 토핑 선택 방법은 ‘폰카’와 ‘인터넷’을 타고 퍼져 나갔다.

LS그룹 구자홍(具滋洪) 회장의 딸로 서울 강남구에 명상센터를 차린 구진희(具眞嬉) 씨는 비슷한 감성을 가진 고객만을 대상으로 레스토랑과 패션 분야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 기술만으로는 ‘2% 부족’

최근 휴대용 멀티미디어 제조업체인 레인콤은 ‘U10’이라는 MP3플레이어를 선보였다. 이 제품은 돌출형 스위치가 없는 대신 컬러 화면 테두리가 스위치 역할을 한다. 기기를 조작하는 과정에서 ‘재미(fun)’를 느끼도록 한 것.

미국 루터교 소아종합병원의 가상환경 체험 시스템은 필립스 제품이다.

필립스는 지난해 ‘인간을 위한 디자인’과 ‘간편한 체험’을 제품 생산의 기준으로 삼았다. 첨단기술이라도 인간의 오감(五感)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제품은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삼성건설)은 최근 패션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디자인한 주상복합아파트 ‘트라팰리스’를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분양했다. 패션의 감성을 주택에 결합하려는 시도다.

제일기획 브랜드마케팅연구소 이주현(李周炫) 연구원은 “주인에게 말을 거는 캐릭터가 휴대전화에 등장하는 등 감성에 호소하는 상품이 전 산업으로 확산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 기술과 감성의 융합

기업이 감성 마케팅에 주력하는 것은 혁신적인 기술과 효율적인 생산 능력만으로는 제품 차별화가 힘들다는 판단 때문이다. 제조 기술이 평준화되고 정보 교류 속도가 빨라진 탓이다.

트렌드 컨설팅업체인 아이에프네트워크 김해련(金海蓮) 사장은 “마징가 제트(힘과 효율)의 시대는 가고 애완용 고양이 로봇(감성)의 시대가 왔다”며 “차별화의 요소로 감성이 중시되면서 기술과 감성의 융합은 가속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이민훈(李敏訓) 연구원은 “기술에만 의지해 상품화를 하면 경쟁사에 금세 따라잡힌다”며 “감성으로 무장한 상품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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