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경제부 선정, 2003 경제 10대 뉴스

  • 입력 2003년 12월 16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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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이 이렇게 고통스러울지 몰랐다. 2003년, 한국 경제는 외환위기 이후 가장 길고도 어두운 터널을 지나왔다. 최악의 경기 침체와 신용불량자 급증, 대기업 총수의 구속, 금융위기, 실업난, 집값 폭등이 정거장마다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터널은 끝나지 않은 듯싶다. 이제 겨우 미명(微明)을 느낄 뿐이다. 동아일보 경제부가 선정한 올해 한국 경제 10대 뉴스를 소개한다.》

▼소비-투자 위축 환란후 최악의 경기침체 ▼

#환란(換亂) 후 최악의 경기침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9%. 1998년 이후 5년 만에 최악의 성적표가 확실시된다. 극심한 소비 위축과 투자 부진이 가장 큰 이유였다. 10월 도소매판매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1.7% 줄었다. 올해 3월 이후 8개월째 내리막이다. 3·4분기(7∼9월) 국내 총투자율은 18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1∼9월 실질 국민총소득(GNI)도 98년 이후 처음으로 뒷걸음질쳤다. 그나마 수출이 호조를 보여 올 1∼11월 무역흑자액(134억5200만달러)이 작년보다 37.6% 늘었다. 하지만 수출 증가가 소비와 투자를 견인하는 선순환구조는 복구되지 않고 있다.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 실감나는 한 해였다.

▼SK비자금-대선자금 수사…재계 수난의 해 ▼

2월 17일 검찰이 재계 3위인 SK그룹을 압수수색해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과 SK해운의 대규모 분식회계와 비자금 조성이 드러났다. 이로 인해 최태원(崔泰源) 회장이 구속되고 손길승(孫吉丞) 회장은 퇴임했으며 외국 자본의 지분 매집으로 경영권이 흔들리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어 최근에는 주요 그룹의 불법 대선자금 제공 문제로 확대됐다. 삼성 LG 현대자동차 SK 롯데 등 내로라하는 주요 그룹이 모두 검찰수사 대상에 올라있다. 일부 계열사는 이미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고, 총수들은 출국 금지되는 수모를 겪었다. 또 일부 그룹에 대해서는 편법 상속 혐의에 대한 수사, 또는 내사도 진행 중이다. 대선자금 수사로 기업 활동이 위축된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번 기회에 정치권과 재계의 유착을 끊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카드채-LG카드 사태로 금융불안 심화 ▼

#LG카드 사태…금융 불안 심화

3월 SK글로벌 분식회계로 빚어진 투신권 환매사태로 신용카드사들의 유동성 위기가 불거졌다. 정부의 ‘4·3 금융시장 안정대책’으로 카드사들이 4조6000억원 규모의 증자(增資)에 나서면서 급한 불을 껐다. 하지만 경기 침체와 연체율 증가로 카드사들은 또다시 유동성 위기에 내몰렸다. 결국 11월 자산 24조원의 LG카드가 현금서비스를 중단할 정도의 위기에 직면하면서 2차 카드 대란을 겪었다. 투신권 자금이 이탈하고 주가가 급락했다. 채권단이 2조원을 긴급 수혈해 위기를 봉합했지만 여전히 앞날을 안심하기는 이르다.

▼신용불량자 359만명 사상 최고치 기록 ▼

#신용불량자·가계부채 사상 최대

10월 말 현재 개인 신용불량자가 359만6168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경제활동인구(2320만명) 100명 당 15.5명이 신용불량인 셈이다. 특히 10월 신용불량자 증가율(3.58%)은 9월(2.62%)보다 높아져 금융 부실이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신용불량자 증가는 생계형 범죄나 세금 체납, 보험 해약으로 이어져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가계 빚도 역대 최대 규모다. 3·4분기(7∼9월) 가계신용(가계대출 및 물품 외상구입) 총 잔액은 439조9481억원, 가구당 빚은 2921만원으로 집계됐다.

▼강남 부동산 폭등세 10·29대책에 꺾여 ▼

#집값 대란과 잇따른 부동산 대책

올해 들어 11월까지 서울 집값은 평균 16.1% 올랐다(부동산114 조사 기준). 특히 강남구 25.9%, 송파구 27.3%, 서초구 14.5% 등 ‘강남 빅3’로 불리는 지역의 집값이 상승세를 주도했다. 일부 아파트 값은 2배 이상 뛰기도 했다. 분양권 전매 제한, 재건축 추진 아파트 80% 이상 시공후 분양 등 각종 대책이 쏟아져 나왔지만 집값을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10월 29일 주택거래신고제 도입, 재산세 7배까지 중과(重課) 등 ‘반(反)시장적 대책’이 발표되면서 집값이 진정 기미를 보였다. 하지만 안정세가 지속될지는 의문이다.

▼中으로…中으로…제조업 공동화 가속도 ▼

#중국의 부상(浮上)과 한국 제조업 공동화

중국이 제조업 강국으로 입지를 굳혔다. 올해 중국 제품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7%로 일본(6.5%)을 앞질렀다. 또 500억달러, 4만여 건에 이르는 외국인 투자를 유치했다. 이 같은 중국의 도약은 한국 제조업의 공동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올해 들어 9월까지 한국 제조업의 중국 투자는 7억6000만달러(959건)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69.8% 늘었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조사에 따르면 국내기업의 64%가 해외로 공장을 옮길 것을 검토 중이며 대부분은 중국 이전(移轉)을 희망하고 있다.

▼청년실업 고착 '이태백'등 신조어 유행 ▼

#늘어가는 청년실업…직장인 해고 공포

‘청년실업’이 고착화하는 경향을 보였다. 11월 청년층(만 15∼29세) 실업률은 전달보다 0.7%포인트 상승한 8.0%로 올 3월(8.1%) 이후 다시 8%대에 진입했다. 청년층 실업자 수는 한 달 동안 3만8000명이 늘었다. 하루 평균 1266명씩 실업자가 생긴 셈이다. 전체 실업률도 3%대에서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고용여건이 악화되면서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삼팔선’(38세 조기퇴직),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회사에 남으면 도둑놈)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외환銀 인수등 외국자본 금융시장 점령 ▼

#외국자본 한국 금융시장 점령

8월 27일 미국계 투자펀드인 론스타가 외환은행 지분 51%를 1조3800억원에 사들이기로 최종 합의했다. 이로써 8개 시중은행 중 3개(제일·한미·외환은행)의 경영권이 외국인에게 넘어갔다. 또 11월 25일에는 정부가 현투증권을 미국의 종합금융그룹인 푸르덴셜에 팔기로 하는 본 계약을 맺었다. 외국계 자본의 한국 금융시장 점유율은 6월 말 현재 은행 26.7%, 증권 30.7%, 생명보험 10.5% 등이다. 외국계 자본의 국내 금융시장 진출은 선진 기법 전파 등 장점도 있지만 시장 불안정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많다.

▼봇물터진 노사분규…물류대란 겪기도 ▼

#노사분규 격화…물류대란

‘파업공화국’으로 불릴 만큼 노사분규가 많았다. 1월 9일 두산중공업, 5월 2일 화물연대, 6월 25일 조흥은행, 6월 28일 철도노조, 8월 21일 화물연대 2차 파업 등 대형 사업장 중심으로 분규가 일었다. 특히 화물연대 파업은 부산항 전면 마비 등 물류대란을 야기했다. 파업이 줄을 이으면서 노무현(盧武鉉) 정부의 ‘친노(親勞) 정책’에 대한 비판도 쏟아졌다. 두산중공업 파업과 1차 화물연대 사태 등에 개입한 정부가 노조뿐 아니라 노동관계법상 노조원으로 인정되지 않는 지입차주들에게까지 일방적인 편애를 보여줬다는 것. 이 때문에 노동계의 기대치만 높여 줘 결과적으로 연쇄 파업을 유발했다는 지적이다.

▼정몽헌회장 자살…현대그룹 경영권 분쟁 ▼

#정몽헌 회장 자살…현대-KCC 분쟁

8월 4일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 회장이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 본사 사옥 12층에서 투신자살했다. 고(故) 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5남인 정 회장은 2000년 3월 ‘왕자의 난’ 이후 경영에서 물러나 대북(對北)사업에 전념했다. 하지만 작년 9월 불거진 대북 비밀송금 문제 등의 여파로 결국 목숨까지 끊어야 했다. 정 회장 자살 이후 부인인 현정은(玄貞恩)씨가 현대그룹의 지주회사격인 현대엘리베이터 회장으로 취임했지만 시숙부인 정상영(鄭相永) KCC 명예회장과 경영권 다툼을 빚고 있다.

정리=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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