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체질 약화… "새 성장동력 찾아라"

  • 입력 2003년 12월 1일 17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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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2월 4일 국제통화기금(IMF) 상임이사회는 한국에 550억달러의 차관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한국은 공식적인 ‘IMF 관리체제’에 들어갔다. 그로부터 6년. 한국은 IMF에서 빌린 돈을 2001년 8월 모두 갚았다. 3년8개월 만의 ‘조기 졸업’이었다. 한때 ‘IMF 모범생’이라는 국제사회의 칭찬도 받았다. 하지만 ‘현주소’는 어둡다.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경기 침체는 물론 ‘성장 동력’이라는 측면에서 들여다보면 외환위기 때보다 더 심각한 어려움에 빠졌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특히 2000년 8월부터 이어진 이번 불황은 1970년 이후 가장 긴 침체기로 기록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지표상 ‘IMF 충격’은 일단 벗어났다=외환위기를 특징짓는 지표는 3고(실업률, 금리, 환율) 2저(외환보유액, 주가지수)로 요약된다.

실업률은 98년 7.0%까지 치솟았지만 2002년 3.1%까지 떨어졌다. 금리도 3년 만기 회사채 기준 97년 말 28.98%에서 올해는 5%대에 머물고 있다. 원-달러 환율도 같은 기간 1695원에서 1202원(올 11월 28일)으로 안정됐다.

정부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97년 말 89억달러에 불과했던 외환보유액은 올 10월 말 1433억달러를 기록해 16배로 늘었다. 종합주가지수도 거래소 기준 376.31에서 796.18(올 11월 28일)로 뛰었다.

▽짧은 회복, 긴 침체=통계청이 동행종합지수(현재 경기 국면 및 전환점 파악을 보여주는 지표) 순환변동치로 추정한 70년 이후 경기 순환 주기(週期)는 평균 53개월. 대체로 33개월 동안 경기가 상승한 뒤 정점을 찍고 나서 19개월 동안 수축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경기 순환 국면은 확장기(경기 상승기)가 짧아진 반면 수축기는 대폭 길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반짝 상승’ 이후 장기침체로 접어들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98년 8월 저점을 찍은 경기는 24개월 뒤인 2000년 8월 정점에 도달했다. 외환위기 이후의 급격한 반등으로 인해 확장기가 평균보다 9개월 짧아졌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2000년 8월 경기 정점에서의 순환변동치는 102.2에 불과해 직전 정점인 96년 3월 105보다 낮은 선에서 경기 회복이 멈췄다. 반면 침체기는 올 10월까지 38개월 동안 지속되고 있어 평균(19개월)의 2배에 이른다.

통계청 김민경(金民卿) 경제통계국장은 “경기확장기는 길어지고, 수축기는 줄어드는 게 세계적인 추세이지만 한국은 예외”라며 “2000년 8월 이후 단기적인 경기 저점(2001년 8월)과 정점(2003년 1월)이 나타났지만 이를 거시적인 경기 순환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내부 동력이 없다=경기가 장기 침체로 접어들 조짐을 보이는 데 대해 전문가들은 경제의 체질 자체가 약해져 외부 충격에 취약한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금융연구원 최공필(崔公弼) 선임연구위원은 “외환위기 이후 삼성전자 등 국제경쟁력을 갖춘 기업은 소수만 남은 데 반해 대다수 제조업체들은 한계 상황에 처해 있다”며 “주가에서 드러나듯 우량기업과 비(非)우량기업의 양극화는 산업 전체의 투자 위축과 소비 둔화를 불러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전통적인 경기순환 이론으로는 일부 기업들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낙오되는 지금과 같은 산업 구조를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경기가 확장기에 들어선다고 해도 수치가 왜곡돼 전달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조동철(曺東徹) 거시경제연구팀장은 “제조업이 위축되는 것은 세계적 트렌드”라고 전제하고 “다른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하지만 이를 위한 국가적 의지가 없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외환위기는 외부의 충격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지금은 내부를 어떻게 추스를 것인지가 중요하다”며 “전 사회적으로 마음먹고 ‘경제를 하겠다’는 시스템을 복구하지 않는 한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기대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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