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돈 이젠 끊자]<下>영국-일본은 어떻게

  • 입력 2003년 10월 30일 18시 25분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산하 부경총련 소속 대학생들이 30일 부산 남구 대연동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 사무실 앞에서 가짜 1만원권 지폐로 100억원을 쌓아놓고 SK비자금 한나라당 유입에 대해 항의 시위를 벌였다. -부산=최재호기자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산하 부경총련 소속 대학생들이 30일 부산 남구 대연동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 사무실 앞에서 가짜 1만원권 지폐로 100억원을 쌓아놓고 SK비자금 한나라당 유입에 대해 항의 시위를 벌였다. -부산=최재호기자
파벌과 보스정치로 일컬어지는 일본은 물론 가장 오랜 의회정치 전통을 갖고 있는 영국 역시 오랫동안 ‘검은돈과의 전쟁’을 벌여야 했다.

▽영국=1994년 7월 당시 영국 집권 보수당 의원인 그레이엄 리딕과 데이비드 트레디닉이 건당 1000파운드(약 190만원)를 받고 의회에서 ‘청탁형 질문’을 한 이른바 ‘캐시 포 퀘스천(Cash for Questions)’ 스캔들이 터졌다. 뒤이어 10월에는 일간 ‘가디언’지의 추가 폭로로 의회의 검은돈 거래가 본격적으로 도마에 올랐다. 보수당 각료인 닐 해밀턴과 팀 스미스가 해로즈 백화점 소유주 모하메드 알 파예드의 이해가 걸린 문제를 질의하는 대가로 건당 2000파운드(약 380만원)와 공짜 관광 등 각종 향응을 제공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즉각 윤리위원회와 공직규범위원회가 신설됐고 조사 결과 그동안 10명의 의원이 청탁성 질문의 대가로 돈을 받은 사실이 밝혀지면서 정치자금 개혁이 본격화됐다. 그 결과 2000년 ‘100년 만의 정치자금 개혁안’으로 높이 평가받는 현행 정치자금법이 탄생했다.

숭실대 강원택(康元澤·정치학) 교수는 영국 정치자금법 가운데 “기업의 정치자금 기부 과정을 투명화한 제도가 한국이 가장 참고할 만한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기업이 정치자금을 기부할 때 사전에 주주총회에서 승인을 받아야 하고 4년마다 재승인을 받아야 한다. 정치자금 기부가 특정 경영인의 자의적 판단이나 개인적 이해관계에 의해 이뤄짐으로써 기업에 손해를 입히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승인 대상에는 현금뿐 아니라 공간·시설 무료 제공 등 간접적 지원 비용도 포함하고 있다.

기부 가능 상한액은 없으나 중앙당에 연간 5000파운드(약 950만원), 지구당에 연간 1000파운드(약 190만원) 이상을 기부하면 이름과 금액이 공개된다.

▽일본=일본 재계의 총본산인 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經團連)는 93년 기업 정치자금의 알선 창구 역할을 포기했다. 자민당이 이해 총선에서 야당으로 전락한 뒤 자민당 독주 아래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으로 이뤄져 온 정경 유착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은 이후 정치자금규제법을 개정, 정당에 국고보조금(국민 1인당 250엔)을 지급하는 등 정치자금 양성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지역구 조직 유지 등에 많은 돈이 들어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기업에 손을 벌리는 관행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경단련은 내년에 특별위원회를 설치, 각 정당의 정책과 활동을 평가한 뒤 ‘정치 헌금 지침’을 만들 계획이다. 이를 기준으로 아예 개별 기업이 정당에 자금을 기부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기부에 관한 철저한 기준을 만들고 그 과정과 액수를 모두 공개토록 했다는 점에서 과거와 차이가 있다.

경단련이 정치자금 조성을 포기했던 지난 10여년간 기업들은 정치인과 개별상대하며 곤욕을 치렀다. 특히 후원 모임에 참석할 때 사야 하는 ‘파티권’의 경우는 20만엔(약 200만원) 미만이어야 익명 처리할 수 있어 기업들은 후원회 참석 요청이 올 때마다 파티권을 소액으로 나누어 구입하는 등 대책에 고심해야 했다.

외교안보연구원 박철희(朴喆熙) 교수는 “일본의 경우 불법 정치자금이 발견되었을 때 주변의 ‘깃털’만 형식적으로 처벌하지 않고 ‘몸통’인 정치인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연좌제’를 확대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도쿄=조헌주특파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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