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률 곤두박질…"올라가는 건 실업률 뿐" 고용비상

  • 입력 2003년 7월 18일 1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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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경제성장률이 당초 예상한 5%대에서 3%대 초반으로 곤두박질칠 것으로 예상되면서 고용에 비상이 걸렸다.

통계청이 18일 발표한 ‘6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취업자 수는 2238만3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3만2000명(0.6%) 줄었다.

전년 같은 달과 비교한 취업자 증가율은 1999년 5월 이후 줄곧 ‘플러스’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올해 4월 ―0.7%로 추락했고 5월에도 ―0.4%를 나타낸 데 이어 6월에도 석 달째 ‘마이너스’를 면치 못한 것.

6월 실업자 수는 75만5000명으로 5월보다 1.5% 늘고, 실업률은 3.3%로 0.1%포인트 높아졌다.

통계청 선주대(宣柱大) 사회통계국장은 “과거 사례를 보면 6월에는 실업자 수가 전월에 비해 4%가량 줄고, 실업률은 약 0.1%포인트 떨어졌다”며 “6월에 실업이 증가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실업률 상승 추세는 통계학적으로 계절적 요인을 제거해보면 더 두드러진다.

계절조정 실업률은 △3월 3.1% △4월 3.2% △5월 3.4% △6월 3.6% 등으로 4개월째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아예 취업을 포기해 실업률 통계에 잡히지 않는 ‘실망 실업자’도 늘었다.

지난 1년 동안 구직(求職)활동을 한 경험이 있지만 조건에 맞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취업을 포기한 ‘구직 단념자’는 8만7000명으로 작년 같은 달에 비해 20.8% 증가했다.

이 밖에 15세 이상 노동가능인구가 1년 전보다 37만8000명 늘었는데도 경제활동인구는 오히려 2315만7000명에서 2313만8000명으로 1만9000명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반기(7∼12월)에는 고용사정이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실업률은 경기를 3∼6개월 뒤 반영하는 경향이 있는데 2·4분기(3∼6월) 각종 경기지표가 대부분 외환위기 이후 최악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천광암기자 iam@donga.com

▼구직포기 젊은층 급증 ▼

“일자리 없나”
서울의 한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18일 교내 취업게시판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다. 이종승기자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미국공인회계사(AICPA) 자격증을 딴 P씨(27). 그는 80여개 기업에 이력서를 내고 25번 면접을 봤지만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중소기업에도 몇 군데 찾아가 봤지만 연봉이 1500만원 미만인데다 근무환경이 너무 나빠서 스스로 포기했다.

인터넷 취업정보제공 및 중개회사인 잡링크에는 올해 1월 64만장의 이력서가 쌓여 있었다. 이력서는 2월 87만장, 3월 96만장, 4월 106만장, 5월 117만장, 6월 133만장, 7월 151만장으로 갈수록 늘었다.

▽공식 실업률 통계의 허상=최근 불경기의 여파로 일자리를 찾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구직희망자들은 ‘하루하루가 전쟁’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도 통계청이 발표한 6월 실업률은 3.3%. 지난해 평균 실업률이 3.1%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결코 높은 수준은 아니다.

이 같은 괴리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명문대 경제학과를 올해 졸업한 K씨(24·여)는 20여개 대기업에 입사원서를 냈지만 대부분 서류전형에서 탈락했다. 눈높이를 낮춰 중소기업과 잡지사에도 원서를 내봤지만 기다리던 합격 통보는 오지 않았다. K씨는 기업체 입사를 아예 포기하고 공무원시험 학원에 다니고 있다.

교육 컨설팅 분야에 일자리를 찾아 헤매던 Y씨(27·여)는 최근 구직(求職)을 포기하고 가정을 꾸렸다. 전업주부가 된 Y씨는 당분간 가정생활에 전념한 뒤 적당한 시기에 소자본 창업에 나설 생각이다.

K씨나 Y씨는 일할 능력이나 의사가 있지만 통계청이 발표하는 ‘실업자’에는 속하지 않는다.

전업주부나 전업학생, 구직단념자 등은 비(非)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된다. 비경제활동인구는 작년 6월 1379만4000명에서 올 6월 1419만2000명으로 39만8000명이 늘었다.

▽저소득층과 청년층이 최대 피해자=실업률 통계의 맹점을 극복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중시하는 것은 전년 같은 달 대비 취업자 증가율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6월 고용동향을 자세히 보면 어떤 계층에 취업난이 집중되고 있는지가 여실히 나타난다.

연령별 취업자 증가율은 10대가 ―15.2%로 최악이었고 이어 60대 이상(―4.0%), 20대(―3.7%), 30대(―0.7%) 순이었다. 40대와 50대는 취업자 수가 늘었다.

직업별로는 서비스업과 판매업 종사자가 4.7%, 농림어업 숙련종사자가 6.7%, 기능·기계·조작·조립·단순노무종사자가 4.0% 각각 감소했다. 이들 직업은 6월뿐 아니라 1∼5월에도 취업자 증가율이 마이너스였다.

반면 전문·기술·행정관리자는 3.9%, 사무직종사자는 14.8%의 취업자 증가율을 6월에 나타냈다.

전망도 밝지 않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에 정규직으로 400여명, 임시직으로 1600여명을 뽑았지만 하반기에는 정규직 100여명, 임시직 1000여명을 뽑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조동철(曺東徹) 거시경제팀장은 “소득 5분위 가운데 최하분위의 소득증가율이 지난해 1·4분기 12.5%에서 올해 1·4분기에는 1.8%로 낮아졌다”며 “고용사정이 좋아지지 않으면 저소득층의 소득은 늘어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천광암기자 iam@donga.com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청년층 첫직장 갖는데 1년 걸린다 ▼

학교를 졸업하거나 중퇴한 청년층(15∼29세)이 첫 직장을 갖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 1년으로 조사됐다. 또 10명 중 1명가량은 첫 취업까지 3년 이상 걸렸다.

통계청이 18일 발표한 ‘경제활동인구 청년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올 5월 현재 직장을 가져본 경험이 있는 임금 근로자 496만8000명 가운데 3개월 안에 취업에 성공한 사람은 53.9%인 267만8000명이었다. 나머지는 첫 직장을 구하는 데 3개월 이상 걸렸으며 3년 이상 걸린 경우도 49만8000명(10.0%)이나 됐다.

첫 취업까지 걸린 기간은 평균 12개월로 지난해 6월 조사 때의 11개월보다 1개월 길어졌다. 첫 직장 근무기간은 평균 23개월로 지난해와 같았다.

한편 졸업·중퇴자 청년층 가운데 3명 중 1명이 직장을 갖지 않고 있으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사실상 실업상태에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공식적인 청년실업률 7.6%보다 훨씬 높아 청년층 실업이 심각한 상태인 것으로 분석됐다.

졸업·중퇴자 청년층 인구는 모두 569만명. 이 가운데 정식 실업자(32만5000명)와 아예 일자리를 구할 생각이 없거나 포기한 비(非)경제활동인구(139만6000명)는 모두 172만1000명으로 전체의 30.2%를 차지했다.

통계청 장경세(張慶世) 사회통계과장은 “비경제활동인구에는 재수생이나 고시준비생 등도 있지만 흔히 ‘백수’라고 하는, 직장구하기를 단념한 실망실업자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며 “실제 실업상태는 공식통계상의 실업률보다 더 나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광현기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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