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서니 기든스 교수 "해고와 고용이 유연해야 선진사회"

입력 2003-06-24 19:07수정 2009-10-07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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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대표적인 지성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제3의 길(the Third Way)’의 저자 앤서니 기든스 교수는 전통적 의미의 중도좌파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본보와의 단독인터뷰에서 기든스 교수는 “노동시장이 유연하면서도 실업률이 낮은 사회가 선진사회이고 이를 위한 전략이 제3의 길”이라며 “지식 경제체제가 도래함에 따라 노동자 계층이 급격히 약화되고 각 국가는 세계적인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사회가 세계화를 통해 다른 사회와 잘 통합하는 것만이 세계에 희망을 준다”며 “이 점에서 반미(反美)는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담은 최근 영국 런던 시내 런던정경대(LSE·London School of Economics and Political Science) 학장실에서 있었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에서 ‘제3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

“제3의 길’은 국가가 주도하는 경제개발정책과, 대처리즘으로 표현되는 극단적 자유시장 정책 모두에 대한 반성이다. 선진사회란 유연한 노동시장을 갖고 또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사회이다. 국가주도나 대처리즘 어떤 것도 이러한 사회를 만들기 어렵다. 시장(마켓)의 힘을 활용하면서도 공공의 이익을 유지하도록 노력하는 것, 다시 말하면 각 국가가 세계적 경쟁을 하는 한편 그 사회 내부의 취약한 계층을 포용하는 정책이 제3의 길이다. 지식기반 중심의 경제체제가 나타남에 따라 노동자 계층이 급격히 약화되고 있기에 기존 사회민주주의는 변화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이런 기조가 일반화된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유럽사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사회민주주의가 강하다. 다른 지역에서도 ‘제3의 길’을 추구할 수 있겠는가.

“나라마다 발전 궤도와 역사적 경험이 서로 다르다. 영국의 정책은 다른 나라에 적용될 수도 있고 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은 아주 분명하게 제3의 길을 추구하고 있다. 전통적 좌파 정치인으로 출발했지만 좌파 편향적 정책을 버리고 전임 대통령이었던 페르난두 엔리케 카르도수와 같은 방향을 추구하고 있다. 카르도수 대통령은 ‘제3의 길’의 열렬한 옹호자이다. 만약 룰라 대통령이 전통적 좌파정책을 추구했다면 금융시장을 놀라게 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위기를 맞았을 것이다. 중국도 좋은 예이다. 중국 공산당은 사회민주당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고 있다.”

―2001년 9월 11일 뉴욕 세계무역센터 테러사건 이후 세계는 미국 주도로 움직이고 있다. 북한 핵 문제 등으로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면서 한국은 미국 주도 정책과 다른

‘제3의 길’을 추구하기가 어렵지 않느냐는 분위기가 강하다.

“최근 남북한간, 그리고 북한과 세계 다른 나라 사이의 긴장고조는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의 안보독트린과 연관이 있다. 부시 대통령의 안보독트린과 ‘제3의 길’ 모색 가능성은 분리해 생각해야 한다. 지정학적 문제는 포용(engagement)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올바르다. 부시 대통령의 안보독트린은 힘에 의존하다는 점에서 적절하지 않다. 결국 다른 나라도 ‘힘’에 의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라크전에는 상당한 이유와 명분이 있었음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부시 대통령의 안보독트린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세계의 문제는 ‘다자(多者)간 상호주의적(Multi-lateralistic)’ 접근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따라서 북한을 다루는 데는 포용정책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일부에서 반미감정이 여과없이 분출되는 한편 다른 쪽에서는 미국과의 호흡 불일치가 안보와 금융시장의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고 걱정을 한다.

“현재 미국 행정부와 미국이란 사회를 구분해 생각해야 한다. 부시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 미국사회는 민주당, 공화당이 팽팽히 맞서는 50 대 50의 사회였다. 녹색당 네이더 후보가 4%대의 득표를 올려 앨 고어의 표를 갉아먹지 않았다면 민주당 고어 후보가 쉽게 당선되었을 것이다. 고어 후보를 지지하는 계층은 일방적인 힘의 행사보다는 다자주의적 접근을 선호하는 한편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세계인)적 사고를 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의 다양한 인류가 압축적으로 모여 사는 나라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사회이다. 따라서 미국사회가 세계의 나머지 사회와 잘 통합되는 것이 인류의 미래를 위해 희망적인 일이라 생각한다. 이 점에서 볼 때 반미(反美)는 올바르지 않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지지자로서 나는 미국이 다자주의적인 큰 틀에 포함되도록 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로 그런 틀에 들어가기를 원치 않을 텐데….

“미국 헤게모니론은 과장된 것이다. 15년 전 쯤 미국의 약점에 대해서 지적하는 많은 책들이 나왔다. 미국이 거대한 제국(帝國)을 구축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군사력만 따져 보더라도 이라크 한 나라를 다루는 데 엄청난 어려움을 겪지 않았는가? 또 미국이 세계경제를 완벽히 지배할 힘을 갖고 있나? 그렇다면 미국 경제는 지금보다 훨씬 좋아야 한다.”

―작년 초 런던정경대의 강연에서 한국을 ‘비민주적인 사회’로 규정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나.

“일부 학자들은 비민주적 사회를 ‘원칙적으로는 민주적이나 부정부패가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정당제도가 충분히 발달되지 않은 나라’라고 정의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시민의 권리가 충분히 보장돼 있지 않다. 한국은 이런 측면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렇게 규정했지만, 지금 한국은 실질적이고 지속가능한 민주주의로의 길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완전한 민주주의 사회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탈리아를 보면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모든 언론을 장악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히 민주주의적 사회제도와는 거리가 멀다.”

―한국사회에 아쉬움이 있다면….

“솔직히 말해 한국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다. 하지만 여러 강연에서 강조했던 것은 우선 경제적 번영이다. 1960년대 아프리카의 가장 가난한 나라보다도 어려웠던 한국은 현재 유럽의 포르투갈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에서 앞서고 있다. 역사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인의 지적능력이 뛰어나고 열심히 일한다는 점도 빠뜨릴 수 없다. 젊은 세대의 등장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아쉬운 점은 정치 경제적 영역에서 여성의 지위가 불평등하다는 사실이다. 여성에 대해서 남성과 같은 고려를 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한국이 좀 더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은….

“코스모폴리탄적인 사고를 가져야 한다. 앞으로 젊은 세대가 사회 주도 세력이 되면서 자동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이기도 하다. 다른 나라와의 경제 문화적 접촉과 교류가 많아지면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않고는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 최근 대만을 방문하고 놀랐다. 다수의 정치지도자들이 모두 40대거나 그 이하였다. 동양 사회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었다.”

―올여름이면 런던정경대 학장직을 마치게 되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책을 읽고 쓰는 일에 몰입하고 싶다. 나는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삶을 지향하는 인간이다.”<영 런던정경대에서>

대담=경제부 김용기기자 ykim@donga.com

▼앤서니 기든스 교수는▼

본보 김용기 기자(오른쪽)가 유럽의 대표적 지성인인 앤서니 기든스 교수(런던정경대 학장)와 런던정경대 학장실에서 대담을 하고 있다.-사진제공 런던정경대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1994년), ‘제3의 길’(1998년) 등의 저자인 앤서니 기든스 교수(런던정경대학장)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사회학자이다. 30여권의 저서가 35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 출간됐다.

전공인 사회학을 넘어 사회사상, 계급구조, 정치권력, 민족주의, 가족 및 성(性), 세계화 등 관심영역을 끊임없이 넓히고 있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각국 원수 및 정치지도자와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1999년 영국 BBC 방송은 세계 주요도시에서 기든스 교수의 강연을 주선하고 그 내용을 방영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등에게 독일 정부에 대한 정책을 조언해왔다.

미국 뉴욕의 9·11테러 이후 시작된 블레어 총리의 적극적인 대(對)조지 W 부시 미 대통령 포용정책의 배경에는 기든스 교수의 ‘다자적 상호주의’ 정신이 영향을 미쳤다. 1998년과 2001년 두 차례 한국을 방문해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 등을 만났다.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붙인 채 불을 뿜듯이 하는 열정적인 강의로 이름난 기든스 교수는 이번 대담에서도 노타이 차림으로 쉼 없이 자신의 견해를 쏟아냈다. 말을 그대로 옮기면 글이 되는 빼어난 말솜씨를 가진 그를 덴마크 아후스대는 세계 최고의 명강사로 선정하기도 했다.

▼앤서니 기든스 교수 약력▼

▽1938년 영국 런던 출생

▽학력=헐(Hull)대 학사, 런던정경대 대학원 석사,

케임브리지대 대학원 박사

▽경력=1970년부터 케임브리지대 강의, 교수

1997년부터 런던정경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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