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싱크탱크]<3>한국개발연구원(下)

입력 2003-06-24 17:55수정 2009-10-1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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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진이 회의가 끝난 뒤 사진촬영을 하면서 활짝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왼쪽부터 박진 김우찬 이승주 박헌주 정권 이주호 안덕근 유윤하 교수, 정진승 원장, 윤혜영 교학부처장. 전영한기자
세계 열 번째 ‘자원 부국’이면서도 가난에 시달려온 몽골은 1980년대 중반 사회주의를 버리고 시장경제 체제를 선택했다.

개혁과 개방 효과가 본격화된 94년부터 2000년까지 몽골 경제는 연평균 3.5%의 실질성장을 했다. 그러나 ‘1인당 국민소득 2000달러’의 벽을 넘지 못했다.

체계적인 전략과 정책 아이디어를 제공해줄 ‘싱크탱크’가 없으면 질적으로 도약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절감한 몽골 정부는 올해 몽골개발연구원(MDI·Mongolia Devel-opment Institute)을 설립했다.

MDI가 어떤 기관을 모델로 했는지는 이름만 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KDI(Korea Development In-stitute), 한국개발연구원이다.

MDI는 이름뿐 아니라 조직 형태나 기관 운영도 KDI와 비슷하다. 구본호(具本湖) 전 KDI원장이 지난해 7월 몽골을 직접 방문해 MDI 전반에 관한 자문에 응해줬기 때문이다.

아시아에서 KDI를 모델로 설립된 싱크탱크는 MDI가 처음이 아니다. 대만의 중화경제연구소, 태국개발연구소, 베트남개발연구소 등도 KDI를 모델로 삼았다. 또 설립과정에서 KDI에서 많은 조언을 받았다.

KDI의 생명활동은 ‘개체 성장단계’에서 ‘종족 번식단계’로 바뀐 셈이다.

▽세계의 싱크탱크로=정부 주도의 경제개발 모델이 빛을 잃고 민간연구소 설립이 활발해지면서 한국 안에서 KDI의 상대적 역할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다.

KDI는 무대를 세계로 넓히는 데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설립과 운영 노하우를 전수함으로써 ‘복제품’을 만드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KDI가 ‘한강의 기적’에 조역을 맡으면서 쌓아놓은 지식자산을 아시아 동유럽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이 직접 활용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예컨대 올해 7∼9월 몽골에서는 △금융정책 △수출성장전략 △조세정책 및 관리에 관한 정책자문 세미나가 잇따라 열린다. 여기에는 KDI 외에 산업연구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조세연구원 등의 전문가들도 참여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관리하는 곳은 KDI 국제교류협력센터다.

KDI는 인도네시아(산업경쟁력 강화정책 등) 라오스(재정·조세정책) 캄보디아(경제개발정책) 필리핀(국가표준제도와 수출경쟁력) 베트남(세계무역기구 가입 자문 등) 미얀마(경제개발정책) 엘살바도르(기술혁신) 등과도 비슷한 지식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노기성(盧基星) KDI 국제교류협력센터 소장은 “경제개발전략, 경제계획, 위기관리, 정부 기업 금융 구조개혁, 민영화, 노동 복지 환경 교육 등의 분야에 대한 한국의 경험을 포괄적으로 전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기 잡는 법을 알려 준다=지식교류 프로그램을 통한 정책자문이 ‘물고기를 주는 것’이라면 ‘낚시법’을 알려주는 프로그램도 있다. 국내외 경제관료 기업인 언론인 등을 대상으로 경제정책과 기업경영 실무를 교육하는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육과정이 그것이다.

다음은 터키 재무부 간부인 오즈거 데미콜이 KDI 국제정책대학원 졸업 동기생에게 보낸 e메일의 한 토막.

‘99년 한국에서 돌아오자마자 터키에도 한국과 비슷한 외환위기가 진행됐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차관을 받아야만 했는데 한국의 외환위기를 지켜본 저는 적임자로 꼽혀 IMF와의 협상 주역으로 참여했습니다. 제가 98년 한국의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강의와 토론을 통해 배운 내용은 너무나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터키를 위해 큰 행운이었습니다.’

데미콜씨처럼 KDI 국제정책대학원을 졸업한 외국 공무원은 114명. 34명은 재학 중이다.

정진승(鄭鎭勝) 원장은 “외국 공무원 재학생들은 모두 해당 국가에서 엄선된 엘리트들”이라며 “이들이 이곳에서 공부한 실무지식은 그 나라의 정책으로 반영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예컨대 현재 캄보디아에서는 재정경제부 경제분석예측국장, 외교부 한국과장, 산업부 섬유수출과장이 KDI 국제정책대학원 출신이다.

박진(朴進) 지식협력처장은 “캄보디아에서는 섬유류가 주력 수출품”이라면서 “지난해 캄보디아를 방문했더니 ‘한국의 초기 수출전략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며 고마워했다”고 전했다.

안덕근(安德根) 교수는 “한국이 개발도상국의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며 “수가 많은 개발도상국은 국제통상협상에서 중요한 세력이기 때문에 우군(友軍) 확보라는 실리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KDI 국제정책대학원을 이끄는 주역들=정 원장은 원래 산업경제 전문가였으나 KDI 선임연구위원이던 86년경부터 환경문제가 주요 이슈로 부각하자 전문분야를 바꿨다. 환경기술개발연구원 원장, 환경부 환경정책실장과 차관 등을 지냈다. 환경부 차관 시절 팔당호 수질개선대책 등을 주도했다.

남일총(南逸聰) 교수는 민영화, 기업 도산, 게임이론 분야의 전문가. 한국통신과 가스공사의 민영화에 참여했으며 현재 서울지법 파산부의 관리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유윤하(柳潤河) 교수는 어려운 경제학을 쉽게 가르쳐 인기가 많다. 지난해 학생들의 교수평가에서 1위를 했다.

유일호(柳一鎬) 교수는 40대에 이미 굵직한 국책연구기관인 조세연구원의 원장 자리에 앉은 경력을 지녔다. 야당 총재를 지낸 정치인 유치송(柳致松)씨의 아들이다.

유종일(柳鍾一) 교수는 유종근(柳鍾根) 전 전북지사의 동생으로 지난해 대선에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를 맡았다. 미국 영국 일본 등에서 강의한 경험이 있다.

이영기(李永琪) 교수는 국내에서 사외이사제도의 도입을 처음으로 주장한 기업지배구조 전문가다. KDI 부원장을 지냈다.

함상문(咸祥文) 교수는 자나 깨나 연구에만 열중하고 생활이 규칙적이어서 ‘칸트’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합리적 기대가설 이론을 정립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루카스 시카고대 교수의 애제자. 루카스 교수가 방한하면 안내역을 맡는다.

박진 지식협력처장은 국제행사를 빈틈없이 치러내 이 분야 책을 내라는 권유를 받을 정도. 박승(朴昇) 한국은행 총재의 아들.

박헌주(朴憲柱) 교수는 국제정치를 강의하고 있다.

이승주(李勝周) 교학처장은 맥킨지서울지사 창립 멤버로 억대 연봉을 팽개치고 교수로 변신했다. 기업인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순서로 국내에서 10위 안에 드는 컨설턴트.

이주호(李周浩) 교수는 교육정책과 과외 등을 경제학적 시각에서 분석해 주목을 받았다. 교육학자들이 보지 못하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정권(鄭權) 교수는 글로벌마케팅 전문가로 싱가포르국립대학에서 5년 동안 강의했다.

김우찬(金佑燦) 교수는 재정경제부 서기관 출신으로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부소장을 맡고 있다.

안덕근 교수는 경제학과 법학박사 학위를 모두 갖고 있는 통상전문가. 세계무역기구(WTO) 상소기구의 법률자문관으로도 활동했고 스위스 통상전문대학원에서 강의를 맡고 있다.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현황
이름직위나이연구·전공분야출신대학박사학위
정진승원장56환경정책, 산업조직서강대조지아대-경제학
남일총교수46산업정책, 공기업서울대미시간대-경제학
유윤하교수52법경제, 경제정책서울대캘리포니아대(LA)-경제학
유일호교수46공공경제, 재정정책서울대펜실베이니아대-경제학
유종일교수43거시경제, 개발경제서울대하버드대-경제학
이영기교수55재무관리, 금융정책서울대보스턴대-경영학
함상문교수47국제금융, 파생상품조지타운대시카고대-경제학
박 진지식협력처장37북한경제, 정부개혁서울대펜실베이니아대-경제학
박헌주교수39국제정치, 정치경제오하이오주립대캘리포니아대(버클리)-정치학
이승주교학처장40경영전략, 국제경영서울대하버드대-경영학
이주호교수40노동정책, 교육정책서울대코넬대-경제학
정 권교수39마케팅, e비즈니스연세대일리노이대-경영학박사
김우찬교수34금융정책, 재무관리서울대하버드대-정책학
안덕근교수33국제통상법, 기업법서울대미시간대-경제학·법학
임길진교수55도시계획, 환경정책서울대프린스턴대-계획학
정희수도시경제연구소장71도시계획서울대캐나다 토론토대-경제학
구본호교수69한국경제, 경제발전서울대미네소타대-경제학
김경동교수65사회학, 사회발전서울대코넬대-사회학
김정호교수56도시계획캘리포니아대
(버클리)
미시간대-도시계획학
이계식교수53재정학, 정부개혁서울대뉴욕주립대-경제학
데이비드
벨링
교수62신용분석, 은행경영와바쉬대하버드대-경제학
토니
미셸
교수54다국적기업, 마케팅영국
케임브리지대
영국 케임브리지대-경제학
스탠리
사카이
교수48IT정책과 전략리드대하버드대-지역학(석사)
윤혜영교학부처장31정책학웰즐리대영국 LSE-정책학(석사)

천광암기자 iam@donga.com

▼KDI 박사 면면 ▼

미국 시카고대를 빼고 시카고대 출신 경제학 박사가 가장 많은 곳 중 하나가 한국개발연구원(?).

KDI의 시카고대 출신 박사는 김재형 공공투자관리센터 소장, 함상문 대학원 교수, 임영재 연구위원, 한진희 연구위원, 최경수 연구위원, 강동수 부연구위원, 허석균 부연구위원 등 7명이나 된다.

KDI 사람들만 아는 ‘그들만의 이야기’를 모아본다.

▽미국 명문대 집합소=연구위원과 대학원 교수 중 국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시카고대 다음으로 출신 박사가 많은 곳은 펜실베이니아대. 김중수 원장, 나동민 금융경제팀장, 문형표 재정복지팀장, 조동호 북한경제팀장, 유일호 대학원 교수, 박진 대학원 지식협력처장 등 6명이다.

하버드대 출신은 대학원에 많다. 성태윤 부연구위원을 빼면 유종일 교수, 이승주 교학처장, 김우찬 교수, 데이비드 벨링 교수, 스탠리 사카이 교수(석사) 등 5명이 대학원에서 강의하고 있다.

미시간대와 스탠퍼드대 출신도 각각 5명과 4명으로 많은 편이다.

▽서울대 경제학과 독무대=학부를 따져보면 서울대 경제학과가 단연 많다. 대학원을 빼면 연구위원 44명 가운데 65%인 29명이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원에서는 교수 23명 가운데 9명이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왔다.

▽대학원의 공식언어는 영어=대학원 학생 173명 가운데 41명은 외국학생이다. 이들의 국적은 카자흐스탄 이란 베트남 캄보디아 몽골 라오스 러시아 에티오피아 우즈베키스탄 루마니아 체코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알바니아 중국 콜롬비아 필리핀 태국 미국 캐나다 등으로 ‘인종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따라서 강의는 영어로만 한다. 교수들끼리 가벼운 세미나를 할 때도 하루 종일 영어를 사용한다.

▽학생의 신화, 김흥래 전 차관=대학원 교수들은 가장 기억에 남는 학생으로 행정자치부 차관을 지낸 김흥래 한국지방행정연구원장을 꼽는다. 김 원장은 당초 초빙교수로 대학원에 왔으나 자발적으로 학생이 됐다. 차관 출신인 그가 고교 3년생처럼 공부에 달려드는 바람에 다른 공무원 학생들은 ‘공부가 힘들다’는 불평을 한마디도 못했다는 것.

▽초코파이는 국제식품=이슬람권 동남아권 유럽권 러시아권을 가리지 않고 외국학생들이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식품은 초코파이다. 문화와 인종을 떠나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혀끝에 착 감기는 단맛, 바로 이 한국적인 단맛 때문에 한국을 떠날 때 초코파이 몇 상자를 사가는 것은 전통으로 굳어졌다.

반병희기자 bbhe4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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