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680억의 미스터리

  • 입력 2002년 12월 23일 17시 47분


9월 결산법인 선창산업이 올해(2001년 10월∼2002년 9월) 결산실적에 대한 감사보고서를 12일 발표했다. 선창산업은 합판 등 가구용 목재를 만드는 거래소 상장기업. 자본금 100억원의 평범한 회사다.

그런데 이 회사의 감사보고서가 화제가 되고 있다. 최근 4년 동안 영업을 통해 번 돈에 비해 순이익이 무려 680억원이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돈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정답은 이 회사의 장부 만드는 방법에 있다. 남들은 이익을 더 많이 낸 것처럼 보이려고 장부를 꾸미기도 한다. 그러나 선창산업은 최대한 보수적인 시각으로 장부를 만들어 이익 규모를 크게 줄여놓은 것.

▽사라진 680억원〓선창산업의 올해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은 104억원이다. 장사를 해서 번 돈이 104억원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순이익은 고작 9억원이다.

이런 현상은 올해 만의 일이 아니다. 최근 4년 동안 선창산업은 영업을 통해 모두 654억원을 벌었다. 그런데 그 기간에 순이익은 오히려 28억원 손실로 나와있다. 영업을 통해 번 돈과 순이익의 차이가 680억원이 넘는다.

이자 갚는 데 돈을 많이 쓴 것도 아니다. 이 회사의 부채비율은 60%대로 사실상 무차입 경영 상태다.

▽엄청난 감가상각〓680억원이 사라진 이유는 감가상각 때문이다. 감가상각이란 건물이나 기계 같은 자산이 시간이 지나 ‘낡아진 만큼’을 비용으로 처리하는 회계제도다.

3년 전 200만원짜리 컴퓨터를 샀다고 해도 3년이 지난 지금 이 컴퓨터를 200만원으로 쳐주는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기업도 기계를 사놓은 뒤 시간이 지나면 기계의 가치를 점점 깎아야 한다. 그 돈을 비용으로 처리하는 게 감가상각이다.

선창산업은 지난해까지 최근 6년 동안 무려 890억원을 감가상각으로 처리했다. 회사 전체 자산(2700억원)의 3분의 1을 감가상각으로 비용 처리한 셈.

▽숨겨진 보물일 가능성〓선창산업은 공장에서 사용하는 기계를 8년 정도 쓴다고 계산하고 감가상각을 한다. 그러나 기계 가운데 상당수는 8년보다 훨씬 오래 쓸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이야기.

공장마다 감가상각을 시작한 시점이 달라 언제 감가상각이 완전히 끝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일단 감가상각이 끝나면 선창산업의 이익은 큰폭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대학투자저널 최준철 발행인은 “선창산업의 실적이 나빠 보이는 이유는 순전히 감가상각 때문”이라며 “이런 면에서 선창산업은 실적이 크게 좋아질 것이 예고된 ‘숨겨진 보물’ 같은 기업”이라고 말했다.

선창산업 영업활동 및 순이익 비교(단위:억원)
영업활동으로 번 돈당기순이익
199930130
200019022
200159-89
20021049
합계654-28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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