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음료특집]주류, 원액비율따라 품질 천차만별

  • 입력 2002년 11월 20일 17시 31분



사극 전문 제작자로 유명한 한 방송사의 모 PD. 술 좋아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 없다던가, 한없이 사람 좋기로 유명한 그는 주종(酒種)을 가리지 않고 술을 즐기며 지인을 만날 때면 사무실에 ‘꿍쳐 놓은’ 오래된 위스키를 한 병씩 들고 나와 밥상 위에 놓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날도 역시 그는 귀한 위스키 한 병을 고기판 옆에 내놓으며 “말아 먹자”고 한다. 맥주를 따른 맥주잔에 양주를 따른 양주잔을 빠뜨려 들이켜는 ‘폭탄주’가 돌기 시작했다. 그러자 옆 테이블에서 손님들이 쌈을 싸던 손길을 멈추고 혀를 끌끌 차면서 한탄한다.

“아니, 저 귀한 것을….”

그는 그만 ‘발렌타인 30년’으로 ‘폭탄주’를 ‘제조’한 것이었다. 보통 17년 이상 된 위스키는 ‘슈퍼 프리미엄급’으로 분류된다. 값도 보통 비싼 게 아니기 때문에 이 정도면 이미 ‘술’이 아닌 ‘귀금속’.

그러나 통념과 달리 숙성 연도가 높다고 해서 반드시 ‘귀금속’인 것은 아니다. 어떤 원액을 얼마나 섞느냐에 따라 품질이 천차만별. ‘발렌타인’ 제조업체 얼라이드 도멕의 블렌더 로버트 힉스는 “위스키는 숙성 연도뿐 아니라 술통의 종류, 술통 주변의 공기에 따라서도 맛이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슈퍼 프리미엄급에서도 가장 저렴한 것은 역시 17년 산. 발렌타인 17년을 비롯해 윈저 스카치블루 로얄스틸링 등이 있다. 가장 값이 싸고 많이 팔리는 것은 국산 윈저이며 그 뒤를 스코틀랜드산 발렌타인이 따르고 있다.

품질은 보통 스코틀랜드산을 가장 알아주는데 이유는 기후 때문. 스코틀랜드의 습기는 술을 숙성하기에 가장 알맞기 때문에 숙성과정 중에 알코올 성분이 잘 날아가지 않는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숙성과정에서 딱 알맞은 양만 자연 증발하는 부분을 그래서 ‘천사의 몫’이라고 한다.

그 PD처럼 실수로 슈퍼 프리미엄급 위스키를 ‘말아 먹는’ 것을 본고장 사람이 본다면 기절초풍할 일. 전문가들은 슈퍼급 위스키는 ‘폭탄주’는 둘째치고 ‘온더락’으로 마시는 것조차 금기시한다.

나성엽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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