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규제 다시 늘어난다

  • 입력 2002년 11월 5일 19시 04분



‘규제 완화’를 내세웠던 김대중(金大中) 정부의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각종 규제가 다시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는 그동안 “2001년부터 규제총량을 제한하겠다”고 밝혔으나 각 부처의 이기주의와 민간부문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에 밀려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5일 규개위에 따르면 정부의 총규제건수는 등록제가 처음 시행된 1998년 8월 1만717건에서 2000년 말 7043건으로 줄었다가 지난해 말 7182건, 11월4일 현재 7387건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이 가운데 경제관련 규제는 98년 8월 6904건에서 2000년 말 4751건으로 감소했으나 2001년 말 4998건, 4일 현재 5168건으로 비교적 큰 폭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올 들어 규제건수 줄인 곳 없어〓본보가 20개 경제관련 부처(장관급 위원회 포함)와 외청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올 들어 규제건수를 줄인 곳은 단 하나도 없었다.

98년 8월과 대비했을 때 규제완화에 가장 소극적인 기관은 공정거래위원회로 나타났다. 20개 기관 가운데 공정위만 유일하게 이 기간에 규제건수가 75건에서 82건으로 늘었다.

공정위는 특히 98년 폐지된 대기업집단 출자총액제한제도와 99년 폐지된 신문고시를 지난해 부활시키는 등 규제정책에 일관성도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양금승(梁金承) 경제법령팀장은 “출자총액을 규제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며 “최근 대기업들이 많은 현금을 갖고 있으면서 투자를 하지 않는 큰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분석했다.

▽민간인 대부분, “규제완화 미흡”〓정부는 출범 초기에 비해서는 규제가 줄어든 것을 큰 실적으로 내세우고 있으나, 규제를 당하는 당사자들은 이를 거의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규개위가 웹사이트를 통해 현정부의 규제개혁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254명 중 76%가 “미흡하다”고 답변했다. “매우 잘했다”는 4%, “잘했다”는 9%에 불과했다. 전경련 전동선(全東先) 규제개혁팀장은 “98년에 비해 규제건수는 줄었지만 질적으로는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면서 “중복규제가 많아 한 기관이 규제를 풀어도 다른 기관에 의해 제동이 걸리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정부 안에서도 비판〓규제의 효율성에 관해서는 정부 안에서도 비판이 나온다.

재경부 고위관계자는 “수도권 정비계획법 등에서 통제 관리하기 쉬운 대규모 시설은 신설을 엄격히 제한하고 일정 규모 이하 시설은 완전히 풀어놓는 바람에 수도권 난개발, 소규모 유원지 난립, 축산폐수 급증 등의 문제가 생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규개위의 한 고위당국자는 “규개위로서는 온 힘을 다해 규제 증가를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정권 후반기 들어서는 일선 ‘규제부처’의 힘에 밀려 일부 한계를 느낀다”고 털어놨다.

한편 전경련은 5일 내놓은 ‘시장경제와 규제개혁’이란 보고서에서 “헌법의 과도한 경제규제 조항들이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는 규제의 원천이 되고 있다”며 “차기 정부는 효율적인 규제완화를 위해 헌법개정을 통해 ‘작은 정부’를 구현하고 헌법상의 경제조항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

천광암기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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