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슨의 영화와 좌절 스토리

  • 입력 2002년 1월 30일 15시 36분


2000년 초 이민화 당시 메디슨회장(현 메디슨이사회 의장)은 “수명을 다한 재벌체제의 대안으로 벤처생태계를 조성하겠다” 고 말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박사 출신으로 벤처업계의 대부로 불리던 이씨의 말은 한국경제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전도사를 자임하는 자신감이 넘쳤다. 이 순간이 그의 인생에서나, 회사에게나 정점(頂點) 이었던 듯하다. 하지만 정점의 그 순간, 이미 그 속엔 몰락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다.

1985년 초음파진단기 등 의료기기 전문 제조업체 메디슨을 설립한 이씨는 기술력과 마케팅수완을 발휘해 고속성장을 거듭했다.

사업이 본궤도에 이른 90년대 후반 마침 벤처열풍이 불자 그와 메디슨은 벤처신화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인용됐다. 이씨는 초대 벤처기업협회장을 맡아 벤처 정책의 틀을 짜는 데 깊이 간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찬사가 ‘함정’ 을 피하진 못했다.

대기업의 대안을 지향한다면서 그는 대기업 방식을 닮아갔다. 본업인 초음파진단기 사업의 성공을 지렛대로 삼아 다른 사업으로 몸집을 불려나가는 문어발 확장을 해나갔다. 벤처업계의 큰 형 역할을 한다는 명분은 좋았지만 여러 벤처기업에 마구 투자해 국내외 40여개에 이르는 관련 회사를 거느리기까지 했다.

99년 순익 523억원의 실적은 한번의 바람 이었을 뿐, 벤처열풍이 꺼지면서 그같은 영화(榮華)는 모래성처럼 무너져내렸다.

한편 메디슨의 경영진은 회사가 부도나기 전에 갖고 있던 주식을 일부 팔아치운 것으로 밝혀졌다.

30일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이민화씨는 부도나기 3개월 전인 작년 10월부터 12월까지 몇차례에 걸쳐 모두 58만8720주의 메디슨 주식을 처분했다. 그는 주당 2380∼3003원에 주식을 장내에서 판 것으로 나타났다. 부도로 거래가 정지되기 전인 28일 메디슨의 주가는 2700원(종가 기준)이었다.

이에 따라 작년 9월말 현재 4.63%(157만532주)이던 이씨의 지분은 임원 및 주요주주 소유주식보고서 를 금융감독위원회와 증권거래소에 제출한 올 1월10일에는 3.0%(98만1812주)로 줄었다.

또 이승우 메디슨 사장은 작년 12월24일 2만5000주를 주당 2355원에 팔아 지분이 1.18%로 줄어들었다. 박용헌 메디슨 전 상무는 작년 6월27일부터 9월8일 사이에 10만7247주를 처분했다.

김상철기자 sckim007@donga.com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