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 1만개시대/中]'안방대장' 밖에선 비실

  • 입력 2001년 4월 13일 18시 33분


1998년 이후 한국은 ‘우수인재가 많고 기질에도 잘 맞기 때문에 충분한 승산이 있다’는 판단으로 벤처기업에 자금과 인재를 쏟아 부었다. 정부가 벤처붐을 주도하고 중산층의 여윳돈은 물론 지하자금까지 벤처투자에 가세했다. 그러나 코스닥시장이 붕괴되면서 이제는 ‘벤처의 경쟁력을 냉철하게 점검해봐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벤처기업 대(對) 일반기업〓코스닥시장에 등록한 12월 결산법인의 작년 경영실적을 보면 벤처기업이 일반기업보다 성장성 수익성 안정성 등에서 모두 높았다.

벤처기업들은 기술개발에도 열심이다. 중소기업청의 작년 9월 조사에 따르면 벤처기업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7.1%로 대기업(1.8%)이나 일반중소기업(0.5%)을 크게 웃돌았다.

삼성SDS 강운식 이사는 “위험이 크고 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벤처기업들이 대기업에 비해 분명한 우위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는 이야기.

▽한국 벤처는 ‘방안 퉁소’〓한국의 벤처 중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기업은 거의 없다. 한글과컴퓨터 등 간판기업들조차 명함을 내밀지 못한다.

인구 600만명의 이스라엘의 경우 벤처기업이 인터넷전화와 인스턴트메신저 같은 ‘대박’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또 세계최고의 보안솔루션 업체인 체크포인트 등 130여개 이스라엘계 벤처기업이 미국 나스닥시장에 상장됐다. 국내기업은 두루넷과 하나로통신뿐이다.

이스라엘 전문가인 하이텍얼라이언스 하상욱대표는 “이스라엘 벤처기업들은 처음부터 미국이나 유럽시장을 겨냥해 사업을 하는 반면 한국기업들은 지나치게 국내 시장을 지향한다”고 지적했다.

▽성공한 벤처도 많다〓드물지만 한국 벤처 중에서도 세계시장에서 성공한 기업은 있다.

셋톱박스를 제조해 전량 수출하고 있는 휴맥스의 1∼3월 매출액은 556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16% 증가했고, 순이익은 206억원으로 193% 증가했다. 휴맥스는 세계 유명업체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던 유럽의 일반유통시장을 꾸준히 공략, 이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5년 만에 세계적인 업체로 자라났다. 변대규사장은 “틈새를 파고든 것이 성공비결”이라고 말했다.

토탈소프트뱅크는 소프트웨어 우수인력 유치가 쉽지 않은 부산에서 항만과 선박운영소프트웨어를 특화, 세계 2위 업체로 성장했다.

최장림사장은 “한국 업체가 마이크로소프트와 경쟁을 할 수는 없지만 소프트웨어 자체보다 응용 분야의 경험이 중요한 응용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충분히 세계적인 업체가 될 수 있다”며 “비교우위가 있는 분야를 잘 선택해서 꾸준히 연구개발을 하면 세계시장의 벽은 높지 않다”고 강조했다.

<천광암기자>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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