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逆계열분리' 불허]MK-MH 갈등 재연 조짐

  • 입력 2000년 6월 29일 18시 44분


현대의 계열분리 문제가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현대 내분이 재연되는 조짐도 벌써 나타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8일 밤 현대측에 “공정위는 이미 5월에 현대그룹을 대표하는 동일인(계열주)을 정주영(鄭周永) 전 명예회장에서 정몽헌(鄭夢憲·MH)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으로 변경했다”고 통보했다.

이에 따라 현대측은 29일 “공정위가 동일인을 변경하는 바람에 역계열분리안을 신청할 수 없게 됐다”며 “계열분리 신청서 제출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밝혔다. 현대측은 또 “공정위는 갑작스럽고 비상식적인 조치로 현대의 계열분리를 원천봉쇄했다”며 “계열분리 실패의 책임은 전적으로 공정위에 있다”고 공정위를 격렬히 비난했다.

▽현대측은 왜 ‘왕회장’ 지분에 집착하나〓정주영 전 명예회장과 정몽헌회장의 영향력이 여전히 강한 현대 구조조정본부는 ‘왕회장’이 법적으로 MH계열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에 자동차 주식을 보유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 자동차 회사에 관심이 많아 개인 대주주로 있겠다는데 왜 정부가 간섭하느냐는 것.

그러나 현대측의 속마음은 다른 곳에 있다. 바로 정몽구(鄭夢九·MK)현대자동차회장 퇴진이 목표. ‘TOP 5’만 살아남는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MK가 현대 및 기아자동차를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회사로 키우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현대측은 판단한다. ‘왕회장’은 MK가 지난해 자동차 회장을 맡은 뒤 줄곧 MK의 회사경영 방식에 불만을 갖고 있었고 3월 ‘왕자의 난’ 이후 이런 생각은 확고해졌다.

정주영 전 명예회장은 4월경 MK를 불러 퇴진을 수차례 종용했으나 MK는 거부했다. 왕회장은 MH계열사의 주식을 처분해 자동차의 개인 최대 주주로 변신했고 ‘3부자 동시 퇴진’이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왔다. 그러나 MK는 경영일선에 남을 것을 고집했다.

결국 현대는 일단 약속대로 자동차를 계열에서 분리한 뒤 왕회장의 자동차 지분을 지렛대로 삼아 조만간 MK를 퇴진시킬 방도를 찾을 수밖에 없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왕회장 지분정리’는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안일 수밖에 없다. 왕회장 지분 매각은 MK를 견제할 카드를 포기하라는 말과 같기 때문.

▽내분 재연 조짐〓MK측은 지난해 기아자동차를 인수해 1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켰고 금년에 자동차부분에서 1조3000억원의 흑자를 낼 예정인데 자신을 무능한 경영자로 판단하는 것은 편견이라고 강조한다. 또 다임러크라이슬러와의 전략적 제휴에 성공하는 등 국제업무도 잘 처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자신을 왕회장이 못마땅해 하는 것은 MH측 ‘가신’들이 심신이 약해진 왕회장에게 일방적으로 왜곡된 정보를 주입했기 때문이라는 게 MK측 주장. 또 MH측이 현찰이 풍부한 자동차를 장악해 그룹의 자금난을 타개하려 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런 시각을 갖고 있는 MK에게 왕회장의 자동차 지분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MK측은 경영권 수호라는 명분을 내걸고 28일부터 일부 직원들이 개인당 1000만원씩 현대자동차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 ‘왕회장’ 및 MH 연합군과의 지분대결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자는 것.

양측의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정부는 일단 왕회장의 현대차 지분을 처분해 MK와 MH를 확실히 분리하려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3차 왕자의 난’을 막기 위해 현대를 압박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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