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건설 로비로 본 선거와 돈]정치권 '뒷돈 불감증'

  • 입력 2000년 6월 8일 19시 43분


“자기 돈으로 선거 치르는 얼빠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인 막대한 선거비용과 기업들의 ‘보험들기식 전방위 로비’ 때문에 선거 때마다 정치권 주변에서는 돈을 둘러싼 각종 소문이 무성하다.

특히 선거는 ‘남의 돈’으로 치르는 것이란 고정관념이 정착돼 있는 우리 현실에 비춰 공식적인 후원금보다는 은밀히 지원되는 비공식적인 자금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

이같이 비공식 자금을 전달하는 기업체 사주나 친지 등의 경우는 반드시 후보와의 직접대면을 요구하는 것이 특징이다. 92년 대통령 선거 때 여야 후보들이 지방유세를 다니는 바쁜 일정에도 저녁에는 헬기까지 동원해 귀경하곤 했던 것은 “직접 만나 돈을 전하려는 재벌측의 줄 이은 면담요청 때문이었다”는 게 당시 선거캠프 핵심 관계자들의 실토다. 4·13 총선에서 서울에 출마했던 모후보측의 지구당 간부는 “후보를 직접 찾는 기업체측의 전화가 하루에도 여러 차례 걸려왔다”며 “이런 전화가 뭘 의미하는지 알기 때문에 곧바로 후보와 연결시켜줬다”고 말했다. 이처럼 은밀한 전달방식 때문에 비공식 후원금은 후보 당사자 외에는 돈의 액수나 지출방법을 전혀 알기 어렵다는 점이 또 다른 특징이다.

심지어 후보 당사자도 유세전에 시달리다 보면 ‘소액’의 경우는 기억하기도 어려운 게 사실. 민주당 한 의원의 보좌관은 “동아건설이 전달했다는 500만원 정도는 후보의 손에서 1시간이면 다 없어지기 때문에 후원금으로 처리할 틈도 없는 데다 자칫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비공식 후원금이 쉽게 노출되지 않는 또 다른 원인 중의 하나는 후원금을 전달하는 상대와 로비대상, 즉 돈을 요구하는 주체가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

4·13 총선에서도 여권의 한 실력자는 자신이 지원하고자 하는 소장 후보들과 기업체들을 연결시켜주는 방식으로 상당수 후보들을 간접적인 지원을 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따라서 동아건설 정치자금 살포사건은 실제 이루어지는 정치권의 음성적 돈거래에 비추어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 보편적 인식이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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