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마전' 재건축]시공사 횡포/"돈 더 안내면 공사중단"

  • 입력 2000년 3월 6일 19시 29분


《재건축 열기가 뜨겁다. 서울의 5개 저밀도 지구와 개포 주공, 가락 시영아파트 등의 재건축이 본격화되면서 일종의 붐이 일고 있다. 서울시에서 조합설립을 승인받았거나 사업추진위원회가 결성된 곳만 현재 1000여 곳을 헤아린다. 그러나 ‘재건축만 하면 떼돈을 벌 수 있다’는 인식은 환상이다. 대부분의 재건축 시공사들이 계약에 없는 추가 정산금을 요구하기 때문에 조합원들은 손해를 보기 일쑤다. 시공사와 조합집행부의 ‘은밀한’ 관계도 부담을 늘리는 이유 중 하나. ‘재건축 바람’의 허와 실을 진단하는 시리즈를 3회로 나눠 게재한다.》

96년부터 삼성물산 주택부문의 시공으로 재건축 사업이 진행중인 서울 강남구 도곡동 주공아파트.

공사가 끝나면 2000만원의 사업이익을 돌려 받고 47평형에 입주할 수 있다는 시공사의 말만 믿고 34평형 아파트를 4억5000만원에 구입해 조합원이 된 L씨(52)는 요즘 후회가 막심하다. 98년 삼성측이 계약과 달리 조합원들에게 8900만원씩을 더 내라고 요구했기 때문. 금리상승으로 이주비에 대한 이자부담 등이 추가로 189억여원 발생했고 원자재값도 올라 총 264억원을 더 내야 한다고 삼성측은 설명했다.

확인 결과 삼성측은 조합원에게 대출한 이주비를 확정이자로 당시 상업은행과 계약, 단 한푼의 부담도 늘어나지 않았는데도 조합측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점을 악용해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삼성측은 생떼를 쓰며 억지주장을 굽히지 않고 지속적으로 추가정산을 요구했다.

조합측이 이를 거부하자 삼성측은 일방적으로 공사중단을 선언했고 결국 조합은 계약파기를 선언했다. 그러나 분쟁으로 공사가 늦어질 경우 조합원만 피해를 보기 때문에 결국 조합측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삼성측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했다. 이 결과 L씨는 당초 예상보다 1억1000만원을 더 부담하게 돼 엄청난 손해를 입었다.

처음에는 그럴 듯한 조건을 제시했다가 계약이 이뤄지면 각종 명목으로 추가정산금을 요구하는 재건축 시공사의 횡포는 삼성뿐만이 아니다. 무슨 공사에 얼마가 더 들어갔는지 구체적인 내용을 모른 채 공사 중단을 막기 위해 추가정산금을 지불하는 것은 재건축사업에서 관행화된 일이다. 이미 목돈을 집어넣은 조합원은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작은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

▽추가정산금은 ‘업계의 관행’〓본계약 이후 추가정산금을 요구하지 않는 시공사는 거의 없다. 대부분이 가구당 2000만원 이상을 요구한다. 5000만원 이상을 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거의 모든 재건축 조합원은 시공사의 추가정산 요구로 고통받는다.

남편 몰래 재건축 아파트에 투자한 뒤 9000만원의 추가정산을 요구받고 남편에게 알렸다가 이혼위기에 처한 주부도 있다. 한 50대 실직자는 억대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기대감에 재건축 예정아파트를 샀다가 6000만원의 추가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고민 중이다.

재건축컨설팅을 하는 A씨는 “소형평형의 경우 2000만원, 대형평형의 경우 5000만원 가량의 추가정산금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라며 “일반 조합원은 대부분 이같은 사실을 모른 채 조합설립에 동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시공사에 속는 조합〓계약이 이루어지기 전 시공사가 제시하는 조건은 조합원의 귀를 솔깃하게 한다. “사업이익을 확대하겠다” “이주비를 많이 주겠다” “공사비를 줄이겠다”는 게 단골메뉴. 조합측의 지나친 욕심도 시공사의 과장선전을 부추긴다.

그러나 시공사 선정이 끝나고 공사가 시작되면 시공사는 갖가지 이유를 대며 추가공사비를 요구하기 시작한다. 주로 검증하기 어려운 토목공사비를 늘리거나 물가인상, 이주비 이자인상 등을 이유로 들이댄다.

서울 D아파트 재건축조합 관계자는 “각종 사탕발림을 쏟아내던 시공사들은 본계약이 끝나면 갑자기 태도를 바꿔 억지를 쓰기 시작한다”며 “입주 때까지 시달리게 돼 정신적인 피해도 만만치 않다”고 하소연했다.

▽왜 당할 수밖에 없나〓시공사의 추가부담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시공과정에 대한 정보를 시공사가 독점하고 있기 때문. 자재비 인상이나 토목공사비가 추가됐다며 돈을 요구해도 조합측에서는 이를 검증할 방법이 없다.

여기에 조합 집행부가 점차 시공사편으로 돌아서는 것도 조합원들의 추가부담을 늘리는 원인 중 하나. 예를 들어 시공사가 100억원을 요구하면 집행부는 30억원을 깎는 모양새를 갖춰 시공사의 요구를 들어준다. 도곡주공아파트 조합을 비롯해 상당수 재건축 조합장들이 조합원의 동의를 거치지 않은 채 추가부담을 지불하겠다는 각서를 시공사에 써줘 분쟁이 일기도 했다.

조합이 시공사의 요구를 거부하고 법정투쟁을 벌이더라도 끊임없는 협박과 회유로 대부분은 합의에 이르게 된다. S건설 관계자는 “공사가 지연될 경우 피해는 모두 조합원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공사를 중단하겠다는 협박을 가장 많이 활용한다”고 실토했다. 국토연구원 손경환박사는 “일반분양과 달리 추가정산금이 관행화 돼있기 때문에 착공 이후에는 추가정산금을 받을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 L씨의 재건축 수익률 ▼

L씨의 재건축사업 수익률을 분석해보면 7000만원 가량의 손해가 발생한 것을 알 수 있다. 사업승인이 나기 전 이 아파트 34평형의 매매가는 3억원대. 하지만 시공사가 선정되고 사업이익까지 돌려 받을 수 있다는 말이 퍼지자 값이 4억8000만원까지 치솟았다. L씨는 47평형 입주를 노리고 4억5000만원에 아파트를 구입했다. L씨가 재건축에 들인 총 비용은 ‘아파트 매입가+매입가에 대한 금융비용+추가정산금’.

4억5000만원에 34평형 아파트를 매입해 97년 10월 1억5000만원의 이주비를 받고 이사했기 때문에 아파트 매입비용에서 이주비를 뺀 3억원이 묶인 셈. 2001년 10월 47평형대에 입주예정이므로 이 돈에 대한 4년간의 이자를 연리 11%로 계산하면 1억5000만원의 금융비용이 들어간다. 여기에 시공사측이 요구한 추가정산금 8900만원을 더하면 총 투입비용은 약 7억원 가량.

현재 47평형 로열층 분양권이 5억8000만원선에 거래되고 입주시점까지 5000만원 정도 더 오른다고 가정하더라도 L씨는 재건축사업을 통해 7000만원 가량을 손해보게 된 것이다. 시공사 및 조합 등과의 마찰과정에서 본 정신적 피해는 물론 계산할 수 없다.

<박정훈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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