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한국경제/전망-과제]불황 이기고「2% 성장」

  • 입력 1998년 12월 31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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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세일 행사를 하는 백화점에도 모처럼 고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서울 강남 N호텔과 L호텔은 연초 휴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연일 95%대의 높은 객실 예약률을 올리고 있다. 외국인 바이어나 투자자들이 주요 고객이다. 국가부도 직전까지 몰렸던 한국 경제가 여기저기서 회생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낙관은 이르다. 새해에도 험준한 산봉우리를 숱하게 넘어가야 한다. 2백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는 실업, 불안정한 외환시장과 국제환경 등 경제회복의 걸림돌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지표★

국제적인 충격 요인이 없다면 국내 경기가 상반기중 바닥을 친 뒤 하반기부터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설 것이라는데 국내외 연구기관의 전망이 일치한다. 정부가 보는 연평균 성장률은 2%대. 장단기 금리가 연 7%대 이하로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금융연구원 최공필(崔公弼)경제동향팀장은 “증시 호조 및 환율 안정이 당분간 지속되면서 기업의 자금난이 다소 완화될 것같다”면서 “특히 부동산 및 건설경기가 조금씩 살아나면서 얼어붙었던 소비와 투자가 다소 풀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처분소득 감소와 기업의 수익성 개선 지연, 세계 수요의 위축 등으로 소비 투자 수출의 급격한 확대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전망이다.

또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제대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금융부문의 신용경색이 계속되면 한계기업뿐만 아니라 재무구조가 건실한 기업에까지 부도가 확산되면서 산업기반이 붕괴될 우려도 있다.

금융비용도 제대로 조달할 수 없을 정도로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 기업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기업의 부채위기에서 비롯된 제2의 외환위기 가능성도 있다는 의견이다.

현대경제연구원 정순원(鄭淳元)전무는 “단순한 지표 호조로 경기를 예측하는 것은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무리”라며 “외형상 경기회복은 내년 하반기부터 시작되겠지만 피부로 느끼는 회복은 훨씬 뒤에나 시작될 것같다”고 내다봤다.

실제 1인당 국민소득은 작년보다는 다소 오르겠지만 93년 수준인 7천8백달러에 불과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수출-외환★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경기 둔화로 이들 지역에 대한 수출증가율이 하락하고 외환위기가 다소 진정돼가는 동남아시아에 대한 수출은 소폭으로 상승할 전망이다. 수출은 1천3백억달러 안팎, 경상수지 흑자규모는 2백억∼2백50억달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대우경제연구소 한상춘(韓相春)국제경제팀장은 “자동차 가전 등 주력 수출품인 내구소비재의 세계적 수요위축 현상이 올해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돼 수출전망이 밝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원―달러 환율 상승과 세계경제의 회복세가 따라주지 않으면 급격한 수출 호조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 특히 미국의 경기 후퇴가 가장 큰 악재가 될 전망.

외환 사정도 안심하기 어렵다. 정부는 외자유입과 경상수지흑자 등을 통해 가용외환보유고를 5백50억달러까지 쌓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LG경제연구소 이종원(李宗源)연구위원은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이 재연되면 외국금융기관이 1천5백억달러에 이르는 외채를 조기 회수하려 들 가능성이 있다”며 “러시아 브라질 등의 금융위기가 재연된다면 국제금융시장은 하루아침에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리게 된다”고 말했다.

★과제★

가장 심각한 것은 고용불안이다. 연 평균 실업률은 98년 6%대에서 8∼10%대로 본격적인 고실업시대를 맞을 전망.

2월에 대학문을 나오는 졸업생이 33만6천여명이다. 구직활동을 아예 포기, 실업자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실망실업자를 포함한 잠재실업자는 36만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본격적인 기업구조조정과 공기업민영화 과정에서도 실직자 양산이 불가피하다. 예년과 같은 춘투(春鬪)가 일어나지 않더라도 노사관계 불안까지 겹치면 그야말로 실업문제는 한국 경제를 회복불가능으로 빠뜨릴 가능성이 있다.

핵시설의혹 증폭 등 돌발적인 북한변수가 발생하면 외국인들의 투자기피와 외자유출이 국내경제에 치명상을 입힐 우려도 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대내적 요인, 즉 신용경색의 지속과 장기불황의 가능성이다. 높은 실업과 임금감소, 미래경제에 대한 불안감의 극대화로 기업활동이 위축되면 경기 회복을 지연시킬 수도 있다.

이와 함께 내각제 논의와 2000년 총선 준비 등 대형 정치이슈가 많은 점도 경제운용과 개혁이 정치논리에 휘말리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정치 상황과 총선을 고려해 무리한 경기부양책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경제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치바람이 일고 내수가 좋아지다보면 5대 그룹은 분위기를 타고 구조조정을 피해갈 수 있는 수단을 찾으려 할 것이다. 이같은 상황은 결국 대외신인도 추락으로 이어져 제2의 외환위기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벌어질 수도 있다.

〈반병희·신치영기자〉bbhe4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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