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금융계 한국지원 몸사리기…런던-뉴욕銀 신규대출 기피

  • 입력 1998년 1월 6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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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질만 날 뿐 대박이 없다.’ 한국의 외환위기 해소가 기대대로 진전되지 않고 있다. 처음에는 국제통화기금(IMF)만 나서면 만사가 풀릴 듯 보였다. 그러나 IMF에 이어 미국 백악관과 재무부, 일본 대장성까지 나섰지만 문제는 속시원히 풀리지 않고 있다. 주요국 채권은행들이 지난 연말 이후 뉴욕에서 다섯차례나 머리를 맞댔지만 해결사 역할은 다하지 못하고 있다. ‘펌프의 첫 한 바가지’ 역할을 해야 할 IMF구제금융이 ‘진짜 물줄기’인 민간 금융기관의 대한(對韓)투자 재개를 끌어내지 못하는 양상이다. 왜 이럴까. 국제투자가들은 한국의 회복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한국이 주저앉으면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데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투자대상’을 잃게 된다. 무엇보다 꿔준 돈을 돌려받기도 힘들게 된다. 그러나 ‘나부터 위험을 떠안겠다’는 금융기관은 별로 없다. 모두 사태추이를 예의주시하면서 유리한 조건을 탐색하고 있다.우리로서는 참으로 ‘속타는 일’이다. 한국지원과 관련한 국제금융중심지의 미묘한 표정을 살펴본다. ▼뉴욕〓지난해 12월29일 이후 국제채권은행단회의가 다섯차례나 열렸다. 6일까지 이 모임에서 합의된 사항은 한국의 단기채권을 중장기채권으로 바꿔주고 신규 협조융자를 실시한다는 원칙 정도. 그러나 장기채 전환의 방법이나 규모 및 어느 은행이 참여할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워낙 많은 은행들이 개입되다 보니 서로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로스차일드 투자회사의 분석가 윌버 로스는 “은행들의 구제안은 대부분 겉포장은 그럴싸하지만 제시된 이자율이 너무 높아 한국정부가 받아들이기 힘들게 돼있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부도 직전의 국가에 돈을 빌려줄 때 그 정도의 위험수당을 챙기지 않을 은행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펜하이머 투자사의 자금관리인 아트 스타인메츠는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상황은 한국에 유리하게 되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이 작년 12월에 외환보유고를 헐어가면서 1백40억달러의 악성부채를 갚았기 때문에 일단 숨통이 트였으며 이에 따라 한국정부가 자기 주장을 하면서 돈을 빌리려고 해 타결이 지연되고 있다는 것. 만약 JP모건 등 투자를 위주로 하는 은행 등이 고수익을 노리며 한국투자에 앞장서거나 미국의 무디스와 스탠더드앤푸어스(S&P), 영국의 IBCA 등 공신력있는 신용평가기관들이 한국을 정크본드(투자부적격채권)에서 제외할 경우 결정적 전기가 될 것으로 이들은 보고 있다. ▼런던〓영국의 경우 대한 기존대출에 대해서는 상환기간 연장 등의 조치를 했지만 신규대출은 ‘좀 더 두고 보자’는 관망상태다. 낫웨스트 바클레이스 미들랜드 로이드 등 4대은행을 포함한 영국계 은행들은 대부분 상환기일을 연장했지만 프랑스계 독일계 스위스계 등 기타 유럽은행들은 평균 70%정도 연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영국계 은행들도 연장기간을 한달로 제한하는 등 조심스런 움직임이며 금리를 리보(런던은행간금리)보다 3%포인트 높게 매기고 있다. 현재 4대은행들은 미들랜드은행이 간사역을 맡아 비정기 모임을 가지면서 한국의 추이를 관찰중이다. 유럽계 은행들이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는 ‘아직 한국을 완전히 믿지는 못하겠다’는 것이다. 이들 은행의 관계자들은 “한국이 지금은 급한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에 IMF 요구조건을 모두 수용할 것처럼 얘기하고 있지만 정말 실천할 수 있을지 아직은 신뢰가 가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재벌과 종신고용 등 한국의 독특한 경제구조로 볼 때 과연 한국이 IMF 요구수준의 개혁을 감당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것. 이에 따라 로이드은행의 경우 이달 중순경 담당자를 서울에 보내 한국정부의 IMF조건 이행의지와 기업인들의 개혁의지를 점검할 계획이다. 로이드은행은 이 결과에 따라 이달말경 신규대출을 제공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할 방침. ▼도쿄〓한국을 바라보는 일본의 입장은 ‘일시적으로 어려움에 빠진 이웃을 돕고 싶지만 별로 여력이 없는 형’에 비유된다. 한국의 금융위기는 일본에도 치명적이다. 일본 주요 10대은행이 작년말과 올해초 잇따라 회의를 열어 한국에 대한 단기융자를 회수하지 않고 현재잔액을 유지키로 결정한 것도 이 때문. 그러나 일본의 신규대출은 기대하기 어렵다. 먼저 한국경제의 앞날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추가로 돈을 빌려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일본이 대한(對韓)융자잔액 유지의 조건으로 한국은행의 보증을 요구한 것도 이같은 분위기를 반영한다. 다음으로는 일본의 국내사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작년 하반기 이후 잇따른 금융기관 도산으로 일본의 금융시장이 꽁꽁 얼어붙어 있다. 더욱이 막대한 불량채권에 시달리는 은행들은 국제결제은행(BIS) 요구수준을 맞추기 위해 국내대출조차 꺼리는 상황이다. 한 은행관계자는 “지금 일본 금융기관도 ‘내 코가 석자’인 형편”이라며 “한국경제 위기가 일본에 미치는 악영향만 크지 않다면 기존의 대출도 모두 회수해야 할 실정”이라고 말했다. 〈뉴욕·런던·도쿄〓이규민·이진녕·권순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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