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신탁통치 다큐멘터리]협상-재협상 4차례끝「항복」

  • 입력 1997년 12월 4일 19시 53분


《12월3일은 경제주권 상실을 세계에 알린 날이었다. 4천만 국민의 경제활동에 국제통화기금(IMF)과 그 뒤에 있는 미국의 족쇄가 채워진 날이었다. 5년 전 경제대통령이 되겠다고 호언했던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 이날 미셸 캉드쉬 IMF총재에게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겠으니 도와달라』고 매달렸을 뿐 국민 앞에는 한마디 말이 없었다. IMF의 「신탁통치」에 이르기까지 막전 막후를 되짚어 본다.》 11월 23일 국제통화기금(IMF)실무협의단이 서울로 날아왔다. 이들은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2백5억달러이고 실제 쓸 수 있는 돈은 1백억달러 정도임을 확인했다. 2주일을 버티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26일 도착한 휴버트 나이스 협의단장은 협상을 일사천리로 끌고 갔다. 그는 내년 경제성장률을 2.5%로 낮추고 부실 금융기관을 파산 정리시키라고 요구했다. 정부는 IMF측 요구 수위를 낮추기 위해 일본에 구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일본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급한 나머지 임창열(林昌烈)부총리가 28일 방일했으나 「IMF와의 협상이 타결되면」이라는 조건이 돌아왔다. 임부총리는 29일 오후부터 IMF와의 협상에 매달렸다. 1주일 이상 끌면 국가파산이 불가피했기 때문이었다. 『It’s cheating!(이건 사기야)』 30일 오전 2시반 힐튼호텔 한국측 회의실. 재정경제원 최중경(崔重卿)금융협력과장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이렇게 말했다. 29일 밤늦게까지 임부총리와 나이스 단장은 거시산업 노동 대외거래 금융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합의를 보았다. 이에 따라 양측은 의향서를 교환했다. 하지만 나이스단장은 몇시간 뒤인 30일 오전 0시반경 「비밀」 딱지가 붙은 「이면각서안」을 내놓았다. 「IMF이사회가 열리는 12월3일까지 12개 종금사를 폐쇄하라」는 것. 임부총리는 오전 1시반쯤 재경원 관계자 전원을 힐튼호텔로 긴급호출했다. 이 시간 관계자들은 협상이 마무리된 것이 「불행중 다행」이라며 쉬고 있었다. 1일 오전 0시반 힐튼호텔. 9개 종금사의 업무정지 조치를 받아들인 임부총리는 「최종타결됐다」고 선언했다. 임부총리는 1일 낮 12시 기자회견을 통해 합의문 전문을 발표하고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1일 오전 10시반 합의는 모두 취소됐다. 「부실금융기관을 조기정리해야 한다」는 캉드쉬총재의 추가요구가 전달됐기 때문. 이날 캉드쉬총재와 함께 콸라룸푸르에서 열린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6개국 재무장관회의에 참석중이던 티모시 가이드너 미국 재무차관보는 『한국은 신속한 조치를 명확하고 구체적 시기에 내놓아야 한다』고 주문, 캉드쉬의 요구에 못을 박았다. 임부총리는 다시 2일 새벽까지 재협상에 매달렸다. 2일 오전 8시반 청와대. IMF협의단과의 재협상안을 의결하기 위해 국무회의가 소집됐다. 이 시각 캉드쉬총재와 통화를 끝낸 임부총리는 당황한 표정으로 김대통령에게 「협상 미타결」을 보고했다. 김대통령은 오전 8시55분 고건(高建)총리에게 국무회의를 맡기고 회의장을 빠져 나갔다. 캉드쉬가 새롭게 내건 요구는 재벌해체. 9개 부실 종금사는 이미 업무 정지된 뒤였다. 이날 밤 임부총리는 캉드쉬의 추가 요구를 대부분 수용한 뒤 3일중 합의문에 서명, 공식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3일 오전 7시반 캉드쉬가 서울로 날아왔다. 그는 오전으로 예정된 서명식을 취소했다. 이어 청와대 예방에서 캉드쉬는 김대통령에게 『IMF의 입장을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말했다. 캉드쉬는 오후 6시30분 일본으로 떠나는 비행기 예약까지 취소하고 임부총리를 압박했다. 부실은행 3∼4개의 조기정리를 추가로 요구하며 합의문에 서명해주지 않은 것. 부실은행 처리는 「6개월내 경영개선 불능 판단시 합병 정리」로 결론 났다. 이날 저녁 7시40분.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회의실. 합의문이 조인됐고 캉드쉬는 한국이 IMF 돈을 빌리게 된 사실을 축하해 줬다. IMF 돈을 받지 못했으면 망했을 것이라는 뜻으로 풀이되는 축하였다. 캉드쉬는 『한국은 너무 춥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임규진·백우진·이용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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