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국당이 금융개혁관련 법안에 대해 표결에 의한 단독처리 불가방침을 정한 것은 대선을 앞둔 현실적인 선택으로 풀이된다.
금융개혁 과제가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연두회견에서 밝힌 현정부의 마지막 개혁조치이긴 하나 야측은 물론 관련기관의 반발마저 심한 법안을 대선 직전 국회에서 통과시킨다는 게 너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신한국당은 이미 작년말 노동법개정안을 날치기처리했다가 야당과 노동계의 저항으로 노동법을 재개정, 집권여당의 국정주도권이 급속히 약화되는 과정을 처절하게 경험했었다.
이번에도 금융개혁입법에 대한 사회경제적 거부 움직임은 만만치 않다. 이달들어 한국은행 직원들이 『정부안은 중앙은행의 자율성을 가로막는다』며 독자적인 한은법개정안을 입법청원했고 증권감독원도 직원과 시민 등 5천여명의 명의로 금융감독기관 통합반대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민주노총 사무노련 민주금융노련과 3개 금융감독기관 노조는 금융개혁법안 처리를 차기정부로 넘길 것을 요구하며 총파업 돌입이라는 배수진을 치고 나섰다.
따라서 노동법 파동의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이번 선택의 저변에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전례없는 집권당 후보의 지지율 하락으로 정권재창출의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적 합의가 전제되지 않은 법안을 무리하게 통과시킬 경우 예상되는 정치경제적 파장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신한국당의 고위당직자들은 『청와대가 강행처리를 요구한다면 이대표를 고사시키려는 것과 다름없다』고 입을 모을 정도다.
결국 금융개혁 법안처리가 차기 정권으로 넘어갈 경우 현정부는 『정치권의 반발이 충분히 예상됐는데도 정권말기에 되지도 않을 제도개혁을 추진했다가 매듭도 짓지 못하고 행정력만 낭비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전망이다.
그러나 신한국당이 금융개혁입법을 완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신한국당은 최근 「금융감독체제개편」 등 금융산업구조 선진화를 정강정책 개정안에 명시했다. 따라서 신한국당이 재집권에 성공할 경우 내년 초 임시국회에서 법안처리를 시도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원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