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부도]파장 갈수록 확산…경제 『휘청』

  • 입력 1997년 2월 2일 19시 57분


[李鎔宰기자] 『한보부도의 악몽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崔禹錫·최우석 삼성경제연구소장) 금융권이 한보에 빌려줬다 떼일지도 모르는 돈 4조9천4백여억원. 협력중소업체의 피해액 5천억원. 현대 삼성 LG 대우 등 주요 대기업이 한보부도로 못받게 된 거래대금 6백여억원…. 세상의 관심이 온통 한보의혹에 쏠려 있는 사이 경제는 뒷전에서 깊은 멍이 들고 있다. 연일 천문학적인 피해액수 행진이 계속되고 있지만 한보사태가 경제의 목을 죄어드는 것은 정작 이제부터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재계순위 14위의 거대기업이 쓰러지면서 파생되고 있는 후유증은 직접적인 거래관계가 있는 기업에 국한되지 않고 경제전반으로 퍼져가고 있다. ▼자금시장 「貧益貧」현상▼ 연쇄부도를 막기 위한 정부의 자금지원 등이 잇따르면서 겉보기에 자금시장은 평온하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한보부도 이후 정부가 풀었다는 3조6천억원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는 볼멘 소리다. 은행은 물론 할부금융사 신용금고 파이낸스 등 한보에 놀란 금융기관들은 거래업체의 신용도를 재평가해 점수가 나쁘면 신규여신동결은 물론이고 기존 여신규모를 축소하거나 회수하는데 혈안이 돼 있다. 안전제일주의가 팽배해 담보력이 취약한 기업들은 대출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 이 바람에 중소기업과 건설업체 등 한계기업들의 자금난이 가중, 「풍요속의 빈곤」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 여파로 사채시장이 경색되면서 사채금리가 급등하고 있다. B급 어음은 월 1.4∼1.8%선에서 할인율이 형성되고 C급 어음은 아예 할인이 안되거나 월 2.0%선을 넘는 등 사채금리가 크게 올랐다. 기업의 금융기관대출을 중개하는 향영리스크컨설팅의 李定祚(이정조)사장은 『은행들이 한보부도 이후 소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동안 일부우량기업을 제외한 기업들은 어음할인이 더욱 힘들어지는 등 자금줄이 말라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 악성루머로 곤욕▼ 최근 급성장한 청구 거평 나산 신호 등 중견그룹들은 악성 루머에 시달리고 있다. 이 바람에 A그룹은 최근 거래하던 종합금융사 3,4곳이 동시에 자금회수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한보부도이후 신용도를 재심사한 결과가 나쁘게 나왔다는 것이 자금회수의 근거. A그룹은 결국 운전자금조달을 위해 월 4부에 가까운 악성 사채자금까지 끌어쓰고 있다는 얘기. 루머에 휘말리면서 이들 기업의 주식값이 최근 며칠동안 하한가행진을 기록하고 있다. ▼위기의 中企-지역경제▼ 재계랭킹 12위의 두산그룹 계열 두산개발이 지난달 31일 회사채를 발행하려다 지급보증금융기관이 나서지 않아 발행계획을 철회했다. 중소기업은 아예 자금이 말랐다. 국내 3대 문구업체의 하나인 마이크로 코리아사(연매출액 1천3백억원 규모)가 자금난에 몰려 지난 1일 부도를 내고 쓰러졌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李相泰(이상태)세제금융과장은 『한보부도로 발생한 자금난은 중소기업들의 기술개발과 체질개선노력을 더욱 위축시킬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부도로 중소기업의 구조개선작업은 5년이상 늦춰진 셈』이라고 말했다. 당진제철소가 자리하고 있는 충남 소재 기업들이 한보부도로 받지 못하고 있는 피해액은 1월말 현재 2천6백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8월 수해로 인한 전국의 피해액 4천6백억원의 절반이 넘는다. 이같은 피해규모는 신고된 피해일 뿐 신고되지않은 피해까지 포함하면 수백억원이 추가로 늘어날 전망이다. 충남지역의 한보관련 건설운송업체들의 경우 상당수가 현행법상 금지된 재하청과 재재하청을 해왔기 때문에 신고도 하지 못하고 냉가슴만 앓고 있다. 제철소부지 개발과정에서 받은 토지보상금으로 사채업을 시작한 농민들도 수십억원어치의 한보어음을 할인해주었다가 언제 돌려받을 수 있을지 기약없는 처지다. ▼한국 對外신용도 추락▼ 한보부도로 한국의 신용은 만신창이가 됐다. 미국의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인 S&P와 무디스사는 제일은행을 요주의 대상기관으로 지정하고 상시감시에 돌입했다. 일본은행은 한국계 현지은행지점에 자금공급을 중단하고 한국은행에 정부차원의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같은 신용추락 때문에 한국제지는 최근 해외전환사채 발행계획을 취소했다. 상업은행도 해외주식 예탁증서의 발행시기를 연기했다. 한국계은행들은 해외에서 한보사태이전에 런던은행간금리(리보금리)+0.20%에 단기자금을 조달했으나 이제는 0.30∼0.40%를 얹어야 한다. 이처럼 악화된 국가의 신용도를 다시 끌어올리는데는 적어도 3년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문가들이 본 「대책」▼ 『한보사태와 관련한 의혹은 풀어야겠지만 사태해결을 수사나 정치적 방식으로만 몰고가면 경제회복에 대한 희망보다는 불안만 가중됩니다』(洪淳英·홍순영·삼성경제연구원수석연구원) 한보문제는 의혹과 기업부분을 분리, 경제논리에 입각해 풀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홍수석연구원은 또 기업입장에서는 이번 사태로 인한 연쇄도산을 막기위해 한계기업들에 대한 구조조정 및 인수합병에 나서고 사양산업에서 철수하는 등 경영환경변화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田大洲(전대주)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는 『한보부도가 대형금융사고인 만큼 업계의 대책 요구는 금융부문에 집중된다』며 『자금난을 해결할 수 있는 신속하고도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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