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에는 귀재(鬼才)이지만 합리적 경영에는 젬병」.
한보그룹 부도사태를 지켜본 한 한보그룹 직원이 鄭泰守(정태수)그룹총회장에게 내린 진단이다.
한보 부도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과정의 연속이었다.
은행이 「정총회장 소유의 주식 및 주권포기각서 등을 내놓지 않으면 더이상 자금을 지원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으나 한보는 단 하루치 어음결제자금도 없으면서 이를 거절, 결국 그룹이 공중분해되는 위기를 맞았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수습하지 못하게 된 것.
한보 주변에서는 이같은 엉성한 의사결정과 관련, 한마디로 「주먹구구식 경영」 탓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보의 한 관계자는 『은행이 주식과 포기각서를 요구할 때 그룹 실무자 사이에서는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뤘다』고 전했다.
몇몇 핵심간부가 이를 정총회장에게 진언했으나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라』는 역정에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는 것.
그는 『정총회장 측근에는 창업가신들이 포진해 있고 전문경영인은 발언권이 없는 등 인력배치가 부실하기 짝이 없다』며 『한보가 재계랭킹 14위라고 하지만 경영시스템은 구멍가게 수준』이라고 말했다.
다른 한 관계자는 한보의 경영방식을 「정(情)의 경영」이라고 정의했다. 한번 인연을 맺으면 끝까지 간다는 것.
정총회장은 명절때 선물을 보내야 할 대상자에 새로운 이름을 추가할 권한은 실무자에게 준다. 그러나 기존의 이름을 빼야 할 때는 반드시 본인의 결재를 받도록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의 경영」에 「합리적 경영」을 접목시키는데는 실패했다는 것이 그의 진단.
그는 『사실 작년초 鄭譜根(정보근)회장이 취임하면서 전문경영인체제로 전환할 기회가 있었지만 정총회장이 워낙 튼튼하게 버티고 있는 바람에 무산됐다』고 말했다.
그는 『합리성을 결여한 경영체제 때문에 철강에 대한 무리한 투자 때도 내부적으로 제동이 걸리지 못했고 결국 그룹와해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다른 한 관계자는 『정총회장이 「로비의 귀재」라고 하지만 총회장 본인이 직접 정치실세에게 접근하는 「성층권 로비」만 했을 뿐 전문경영인이 펼치는 「땅바닥 로비」에서는 완전히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한보그룹 임원진중 재정경제원이나 통상산업부 또는 청와대나 안기부 등에 선을 대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
이 때문에 이번 부도사태와 관련한 정부의 의지를 제대로 읽지 못했고 결국 판단착오를 빚는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許承虎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