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光巖 기자」 『과거엔 국책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려면 준비해야 하는 서류분량이 2백페이지를 넘었습니다. 얼마나 대출받기가 어려웠으면 대출을 받아오는 사람을 자금베테랑이라고 불렀겠습니까』
▼ 고압적 자세 사라질 것 ▼
국내 대기업의 자금과장 Y씨는 『금융기관간의 업무영역 구분을 없애 경쟁환경을 만들면 금융기관의 고압적인 자세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S그룹 계열사의 자금부장 L씨는 『은행 단자사 종금사 등 여러 금융기관을 거래하려면 자금전문가도 관련규정을 제대로 다 파악하기 힘들다』면서 금융기관간 장벽을 없애면 기업은 인력과 시간손실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금융개혁도 기업들의 이같은 요구를 수용해 금융기관 사이의 업무장벽을 깨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금융기관간 칸막이가 사라지면 기업뿐 아니라 일반소비자들도 한 금융기관에서 은행 증권 보험 등 모든 서비스를 한꺼번에 받을 수 있는 「원스톱 뱅킹」 또는 「유니버설 뱅킹」시대가 열리게 된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우리보다 훨씬 앞서 이같은 방향으로 나가고 있으며 국내 금융계도 서로 방향과 내용은 다르지만 업무장벽을 허물어야 한다는 원칙에 모두 동의한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한정된 서비스만 제공하는 국내금융기관들이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선진국 금융기관에 맞서 경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업무장벽제거는 소비자를 위해서라기보다 금융기관 경쟁력 강화를 위해 더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금융업계 내부에서 업무영역을 확대하고 제휴상품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싶어도 금방 제도적 규제에 가로막혀 포기하고 마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금융기관들은 금융개혁위원회(금개위)의 역할이 일차적으로 업계 내부의 이같은 움직임에 물꼬를 터주는 게 되어야 할 것을 주문한다.
이렇게 되면 은행은 회사채 인수 주간사 업무를할수있고 기업인수합병과 관련된 알선 및 자문업무가 확대된다.
증권회사는 외환업무범위 등이 크게 넓어진다.
또 은행 보험사간에는 복합상품개발 및 전략적 제휴가 허용된다. 은행창구에서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방카 슈랑스」도 구체화된다.
리스 할부금융 신용카드 등 여신전문기관 통폐합은 이같은 작업에 앞서 우선적으로 추진된다.
그러나 금개위가 본격적으로 가동하면 금융업계나 일반의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개혁안을 내놓을 가능성이 예견되고 있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이같은 내용들은 어느 정도 정부의 단계적인 금융개혁스케줄에 포함돼 있던 것』이라면서 『재경원을 금융개혁작업에서 배제한 의도로 볼 때 금개위에서 훨씬 강도 높은 개혁안이 나오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기업 인력-시간손실 줄어 ▼
제한적이 아니라 금융 증권 보험사간의 자유로운 진출을 허용하는 방안이 나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상호진출은 영국의 자회사방식과 미국의 지주회사방식, 은행이 증권과 보험업무를 직접 하는 인하우스방식중 일단 자회사방식이 유력시된다.
자회사방식은 이미 우리나라에 어느 정도 도입돼 급격한 금융질서의 변화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현행 은행법상 은행이 증권이나 보험 자회사를 설립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으며 증권의 경우 은행이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는 사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