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 그대로인 얼굴… 노년, 익어가는 시간

  • 동아일보

고려대 박물관 ‘… 숙년의 시간’展

조선 후기 문신 이이명(1658∼1722)의 영정. 품위 있는 노년을 맞이한 모습이다. 고려대 박물관 제공
조선 후기 문신 이이명(1658∼1722)의 영정. 품위 있는 노년을 맞이한 모습이다. 고려대 박물관 제공
낚싯줄을 드리운 채 물때를 기다리고, 너럭바위에 걸터앉아 강물에 발을 담근다. 16세기 화가 이경윤(1545∼1611)의 ‘산수인물화첩’ 속 노인들이다. 화폭에 담긴 노년은 물러남이나 쇠락과는 거리가 멀다. 삶의 희로애락을 지나온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여유와 절제, 깊은 성찰이 배어난다.

서울 성북구 고려대 박물관에서 2일 개막한 특별전 ‘老年(노년)을 넘어 熟年(숙년)의 시간’은 초고령사회라는 시대적 화두를 전통의 눈으로 탐색했다. 고사인물도와 도석(道釋)인물도, 초상화, 공예품, 기록화, 고서 등 105건을 선보인다.

전시는 옛사람들이 노년을 바라본 여러 겹의 시선을 따라간다. 1부 ‘오래 산 사람들’에서 노년은 초월적 존재다. 죽음마저 넘어선 신선들이 바다 위를 유유히 거닐고(‘해상선인도·海上仙人圖’), 푸른 소를 타고 함곡관을 나선다(‘청우출관도·靑牛出關圖’). 나이 듦을 쇠락이 아니라 삶이 무르익어 이른 특별한 경지로 여겼기에, 초월의 형상은 곧 이상적인 노년의 얼굴로 그려졌다.

오래 살기를 비는 마음은 물건 곳곳에도 스몄다. 2부 ‘장수의 염원과 상징’에 나온 은장도에는 학과 거북, 소나무, 사슴 등 십장생 문양이 정교하게 새겨졌다. 노년은 축복이면서도 돌봄이 필요한 시간이기도 하다. 3부 ‘노년의 그늘과 돌봄’은 빈곤과 질병, 소외라는 현실에 전통사회가 어떻게 응답했는지 짚는다. 4부 ‘익어가는 나날’에서는 벗과 어울리는 등 풍요로운 나날이 펼쳐진다. 1609년 사마시에 합격한 동기들이 60년 뒤 다시 모여 연 잔치를 담은 ‘만력기유사마방회도첩(萬曆己酉司馬榜會圖帖)’, 1668년 현종이 원로대신 이경석(1595∼1671)에게 궤장(几杖)을 내린 일을 기념한 화첩이 대표적이다.

마지막 5부 ‘어른의 얼굴’은 초상화로 채워졌다. 주름을 감추거나 미화하지 않고 그린 얼굴들이다. 영·정조 대 대사헌과 형조판서 등을 지낸 조정진(1732∼1792)의 초상은 안면의 주름과 콧볼을 음영법으로 입체감 있게 살렸고, 눈썹과 수염의 결도 치밀하게 담아냈다. 고려대 박물관은 “다가오는 새로운 생의 단계를 늙어감이 아닌 익어가는 시간으로 바라보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9월 1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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