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지음이 나의 사수 같았다”…국립국악관현악단, 인간·AI 협업 무대 ‘공존’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6월 16일 15시 36분


“이 곡은 관객들의 설문에서 출발했어요. ‘내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물었더니 많은 분들이 ‘오늘도 수고했어’, ‘잘하고 있어’ 같은 위로의 말씀을 써주셨거든요.”

15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극장 연습실.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생성형 인공지능(AI) ‘지음(知音)’의 음성이 모니터에서 흘러나왔다. 26일부터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선보일 공연 ‘공존’에 나오는 노래 ‘그대라는 기적’을 지음은 이렇게 설명했다.

국악관현악단이 인간과 AI가 함께 음악을 창작한 콘서트를 선보인다. 지음은 국내 생성형 AI 음악 스타트업인 포자랩스가 개발한 국립국악관현악단 전용 AI 프로그램 . ‘공존’은 AI와 인간이 협업해 만든 5곡을 무대에 올리는 인문학 콘서트다.

5곡이 완성되는 방식은 이렇다. 먼저 AI 지음이 곡의 뼈대를 만든다. 창작 과정에선 포자랩스가 보유한 100만 개 이상의 자체 음악 데이터가 활용됐다. 이후 인간 작곡가가 이를 국악관현악에 맞게 다듬어 완성한 뒤. 연주자들이 무대에서 구현했다.

노래에 담긴 메시지나 제작 과정은 조금씩 달랐다. 관객들이 남긴 메시지를 토대로 한 ‘그대라는 기적’은, AI 지음이 작사·작곡하고 보컬로도 참여했다. ‘데이터의 발아’는 관객들의 감정 데이터를 바탕으로 했으며, ‘알고리즘 아리랑’은 여러 형태로 전승된 아리랑 데이터를 이용했다. 손영웅 포자랩스 이사는 이날 현장에서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히 AI가 음악을 만드는 실험이 아니다”라며 “인간과 AI가 어떻게 함께 창작할 수 있을지를 탐구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AI가 큰 역할을 했지만, 실제 완성까진 사람의 손길이 필요했다. 편곡에 참여한 김백찬 작곡가는 “솔직히 ‘지음’이 나의 사수고, 내가 어시스턴트란 느낌을 받았다”며 “‘이분’이 쓴 곡을 악보 따고, 코드 따고, 뺄 건 빼는 식으로 작업했다”고 웃었다. 이어 “인간이 만들었든 AI가 만들었든, 중요한 건 좋은 음악이 완성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AI의 한계도 확인할 수 있었다. 김 작곡가는 “지음이 만든 원곡엔 사람들이 잘 하지 않는 애드리브나 리듬 처리가 있었고, 인간의 기본적인 그루브보다 과한 부분도 있었다”고 했다.

“국악기 표현도 다소 아쉬웠어요. 가야금이라고 표시돼 있었지만, 일본 전통악기 ‘고토’처럼 들리는 부분도 있었거든요. 국악기 데이터가 부족하다 보니 중국이나 일본 악기의 소리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점은 개선돼야 할 부분입니다.”

지휘를 맡은 정예지는 ‘인간 연주자의 해석’을 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 그는 “처음엔 음악 영역까지 AI가 감당하게 될까 봐 낯설고 경계의 대상으로 느꼈지만, 작업 과정이 색달랐다”며 “AI가 만든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기보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의 흐름, 긴장과 이완을 해석에 넣으려 했다”고 말했다.

국악관현악단은 AI 지음 이전부터 음악에 첨단 기술을 시도하는데 적극적이었다. 2023년 공연 ‘부재’엔 국내 최초로 로봇 지휘자 ‘에버6’를 도입했다. 같은 해 ‘관현악의 기원’에선 가상현실(VR) 기술을 활용하는 등 예술과 기술의 접점을 실험했다.

‘공존’은 정재승 KAIST 뇌인지과학과 교수와 지음이 공동 사회를 맡는다. 지음은 이날 “저는 데이터로 곡의 방향을 잡고 뼈대를 만들었을 뿐”이라며 “편곡자와 연주자들이 거기에 살과 숨결을 불어넣었다. 악보에 담기 어려운 미세한 떨림과 호흡은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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