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진주 귀고리 소녀’ 작가의 신작 소설

  • 동아일보

◇글래스 메이커/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박현주 옮김/528쪽·2만1000원·소소의책


1486년 ‘물의 도시’ 베네치아 인근 유리 공예의 심장인 무라노섬. 유리 공방(工房) 집안의 딸인 아홉 살 오르솔라 로소는 오빠에게 떠밀려 물에 빠지고, 경쟁 공방인 바로비에르가(家)의 작업장에 슬그머니 들어가 용광로 앞에서 몸을 말리게 된다. 그리고 너른 어깨, 이마, 심지어 핀을 꽂아 틀어 올린 회색 머리카락의 모양까지 ‘모든 것이 네모 형태로 각진’ 마리아 바로비에르를 보게 된다. 마리아는 전용 소형 용광로를 세우고 특별한 장식 구슬을 생산할 수 있는 허가를 가진 여자였다. “자기만의 용광로를 운영할 수 있는 여자”는 새로운 현상이었고, “세계가 본질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한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사건”이었다.

‘진주 귀고리 소녀’(1999년)의 작가가 쓴 장편 소설이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그림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1655년)는 원래도 명화였지만 작가의 소설과 소설에 바탕을 둔 영화(2003년)로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은 바 있다. 예술가와 그가 살았던 시대를 되살리는 게 특기인 작가는 이번 소설에선 베네치아와 유리 공예가들의 삶을 손에 잡힐 듯 그려냈다.

“그들은 녹은 유리구가 끝에 달린 펀티(punty)라고 하는 긴 철제 막대를 용광로에 넣었다 빼기도 했고, 유리구를 돌리거나 그걸 평평한 성형판 위에 굴리고, 다양한 형태의 주형에 끼워 넣기도 했으며…모두가 이리저리 움직이고 그 한가운데에는 마에스트로가 작업대에 앉아 있었다. …오르솔라는 이 특별히 웅웅대는 에너지를 익히 알았다.”(제1부 ‘술잔, 구슬, 그리고 돌고래’에서)

소설 속 시간의 흐름이 특별하다. 르네상스 시대에서 출발한 소설은 ‘조약돌로 물수제비를 뜨듯’ 시간을 건너뛰면서 계몽주의 시대를 거쳐 베네치아가 세계적 관광지가 된 2019년까지 이어진다. 오르솔라는 전쟁과 역병을 겪으면서도, 고달픈 생활 속에서 치열하게 기술을 연마해 나간다. 마리아 바로비에르 등 역사 속에 실존했던 인물과 작가가 창조해낸 인물들이 어우러지며 엮어가는 정교한 서사시가 매력적이다.

#유리 공예#베네치아#르네상스 시대#진주 귀고리 소녀#트레이시 슈발리에#신작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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