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미술의 대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0)는 “17세기 가장 장대한 예술품 의뢰”로 평가되는 연작을 의뢰받는다. 1622년경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의 딸 에우헤니아 공주가 가톨릭 수도원에 기증할 20점의 태피스트리 연작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전에 출품된 ‘영원의 우화, 교황의 계승’은 이 연작을 위해 제작된 유화 초안 중 하나다. 비록 밑그림이지만, 그 자체로 완결성 높은 예술품으로 여겨진다. 루벤스 특유의 역동적 붓놀림과 풍부한 색채로 완성된 이 작품은 마치 천상의 권위가 지상으로 내려오는 듯한 극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작품이 만들어졌을 당시 유럽은 종교개혁으로 인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의 첨예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었다. 가톨릭 신자였던 루벤스는 여러 우화와 종교적 도상을 활용해 가톨릭 교리의 정당성과 승리를 시각적으로 선포하고자 했다. ‘영원의 우화, 교황의 계승’은 연작 가운데서도 ‘영속성’을 상징하는 핵심 장면이다.
그림 중앙에는 베일을 쓴 여성이 등장한다. 종교화에서 ‘영원’을 상징하는 이 여성은 장미가 줄줄이 달린 긴 끈을 늘어뜨리고 있다. 그림을 소장한 미국 샌디에이고 미술관은 “최종 태피스트리에서는 장미가 역대 교황들의 초상화 연작으로 바뀌어 표현됐다”며 “교황권의 영원한 계승과 정당성을 드러내는 장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림은 큰 호응을 얻었지만, 이후 ‘떠돌이’ 신세가 된다. 미 하버드대에서 출간한 연구서 ‘러시아 미술과 미국 자본, 1900-1940’에 따르면 이 유화 초안은 18세기 후반 러시아 제국 황제이자 예술 애호가였던 예카테리나 2세의 눈에 띄어 러시아로 넘어간다. 모스크바의 국립미술관(현 푸시킨 미술관)에서 국가적 보물로 관리 받았다.
하지만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집권한 소비에트 정부는 경제난을 타개하고자 ‘핵심 소장품 매각’을 비밀리에 실시한다. ‘영원의 우화, 교황의 계승’ 역시 외화벌이 용도로 해외에 내다 팔렸다. 1930년대 유럽과 미국의 경매 시장을 떠돌아 다니다가, 1947년 한 개인 소장가가 샌디에이고 미술관에 기증하며 안식처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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