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인류 문명, ‘이사’ 거듭하며 번창

  • 동아일보

◇이주사란 무엇인가?/크리스티아네 하르치히, 디르크 회르더, 도나 가바치아 지음·이용일 옮김/320쪽·2만2000원·교유서가


인류의 역사라고 하면 흔히 ‘4대 문명의 발상’부터 떠오르기 마련이다. 정주한 인류가 비로소 문명을 꽃피웠다는 통념이 지배적이기 때문. 하지만 이 책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는 곧 이주의 역사”다. “정주하지 않았고, 문자도 없었던 사람들의 ‘선사시대’와 그 이후 정주 제국들과 민족들의 ‘본격적인 역사’라는 단절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등의 교수들이 함께 ‘이주의 역사’를 조명한 학술적 입문서다. 저자들에 따르면 태고 시절 호모 사피엔스가 동아프리카를 나와 세계로 퍼져 나간 것부터가 이주사다. 이후에도 정주하기 시작한 초기 농경시대의 이주들(기원전 1만5000년∼기원전 5000년)이 이어지고, 순환 무역과 식민 정복, 19세기의 글로벌 이주 체계 등을 거쳐 오늘날까지 이주의 역사는 계속된다.

기존의 이주 연구는 국경을 넘어 ‘나가는 이주(emigration)’와 ‘들어오는 이주(immigration)’를 구분하고, 주로 들어오는 이주만 연구했다. 이주민들을 새로운 사회의 제도와 문화에 동화돼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봤던 탓이다. 이런 민족주의적 관점에선 이주민들의 복합적인 삶과 주체성이 묻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저자들은 “문화 접변 과정에서 이주민들은 고국 문화를 복제하지도, 도착지 문화로 통합되지도 않는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의 융합, 즉 제3의 장소 또는 공간을 창조해 낸다”는 설명이다.

“‘문화 접변’은 이중적인 과정이다. 사회화를 통해 얻은 문화의 일부 요소는 유지하면서, 다른 요소들은 수정하거나 나머지는 버리는 이주민들의 새로운 사회나 특정 분야로의 점진적인 접근, 그리고 이러한 뉴커머들에 대한 수용 사회의 대개 마지못한 혹은 뒤늦은 적응으로 이루어진다.”(4장 ‘이주 경로들에 대한 시스템 접근법’에서)

저자들은 또 기존 연구에선 배제됐던 ‘여성’과 ‘젠더’의 틀로 이주의 역사를 살핀다. 최근 세계 각지에서 사회 변화와 함께 갈등을 촉발하고 있는 ‘이주’의 역사를 학술적으론 어떻게 조명하고 있는지가 담긴 책이다.

#이주#인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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