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전 그린 이중섭 ‘연필 자화상’ 상업화랑 첫 공개…새결화랑 기획전

  • 뉴시스(신문)

‘얼굴, 시대를 비추다-현대미술가 11인 인물화전’
22일부터 김인승·천경자·최영림 등 12점 전시

ⓒ뉴시스
서러웠던 시절이었다. 이중섭이 작고 1년 전인 1955년에 제작한 유일한 연필 자화상은 삶과 예술이 응축된 유작으로, 고단한 현실 속에서도 끝까지 지켜낸 예술가의 자존감을 전한다.

이 자화상에는 어떠한 미화도 없다. 주름과 수염, 얼굴에 드리운 피로까지 숨김없이 드러나 있으며, 그로 인해 작품은 자기 연출의 초상이기보다 고백에 가까운 인상을 남긴다. 종이 위에 남은 얼룩과 접힌 자국, 시간의 흔적까지 함께 바라보면, 이 자화상은 한 점의 작품을 넘어 이중섭이 통과해온 삶의 시간 자체처럼 읽힌다.

이 연필 자화상은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린 ‘이중섭, 백년의 신화’전에 출품돼 주목받은 작품으로, 이번에 상업 화랑에서 처음 공개된다.

서울 청담동에 지난 10월 개관한 새결화랑(대표 김시현)은 오는 22일부터 2026년 1월 17일까지 기획전 ‘얼굴, 시대를 비추다-현대미술가 11인 인물화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김인승, 이인성, 김원, 김환기, 이중섭, 최영림, 이준, 박래현, 권옥연, 천경자, 정형모 등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11인의 인물화 12점을 통해, 초상을 넘어 ‘시대의 초상’으로 읽히는 인물화의 흐름을 조명한다.

새결화랑은 “이중섭의 자화상은 소장가가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대여해 준 작품”이라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인물화를 단순한 외형 재현이 아닌, 각 시대가 품은 감정과 가치, 예술가의 시선을 담아낸 회화 장르로 조명한다. 사실적 묘사에서 추상적 내면화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조형 언어로 그려진 얼굴들은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정서 지형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김환기의 인물화는 구상에서 추상으로 이행하던 전환기의 면모를 보여주며, 시대적 고단함과 내면 풍경을 함께 담아낸 작품으로 주목된다.

작가별로 살펴보면, 김인승은 단아하고 세련된 여인 초상을 통해 전후 근대 회화의 품격을 보여주고, 이인성의 ‘소년’은 식민지 시대의 현실 인식과 슬픔을 응축한 표정 묘사가 인상적이다. 김원의 ‘소녀(명순이)’에서는 일상의 따뜻함과 순수한 정서가 전해지며, 김환기의 인물화는 구상과 추상을 잇는 가교로서 한국 현대미술의 변곡점을 드러낸다.

최영림의 ‘만개’는 토속적 신앙과 원초적 생명성을 결합한 인물 형상으로 민족적 전통미를 보여주고, 이준의 ‘자화상’은 격렬한 붓질을 통해 인간 실존의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박래현의 ‘자매’는 수묵과 담채로 소녀들의 정감과 연대감을 담아내며, 권옥연의 ‘여인’은 회색조의 깊이 속에서 현대적 여성의 내면을 포착한다. 천경자의 ‘미인도’는 신화와 현실을 넘나드는 자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정형모의 ‘박정희 대통령’은 연필 소묘만으로 한 시대의 인물을 기록한 작품이다.

전시를 기획한 김윤섭 미술평론가는 “‘얼굴, 시대를 비추다’전은 인물화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가 품은 정서적 풍경과 인간에 대한 예술적 성찰을 함께 조명한다”며 “이번 ‘현대미술가 11인 인물화전’은 작가의 명성보다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의미 있는 작품에 집중해온 새결화랑의 비전과, 이를 함께해온 소장가의 의지가 만나 성사된 전시”라고 밝혔다. 관람은 무료.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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