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상상을 단순한 재미나 사고의 부차적 기능이라고 간주한다. 그런데 사실은 이 상상이 인간 사고의 핵심이며, 우리의 뇌는 외부 세계를 수동적으로 인식하는 게 아니라 상상을 바탕으로 세계를 만들고 예측하는 ‘통제된 환각’ 과정을 거친다고 강조하는 책이다.
일상의 흔한 상상부터, 시각적인 이미지 없이 상상하는 일종의 장애인 ‘아판타지아(aphantasia)’ 같은 극단적 사례까지 광범위한 상상력의 신경과학적 기초와 그 중요성을 밝혔다.
책은 우리의 뇌가 어떻게 상상력을 토대로 외부 세계를 인식하는지를 다룬다. 상상력은 시적 표현처럼 인간 경험 전반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작용한다. 과거 빅토리아 시대부터 상상력에 대한 연구는 심리학 분야에서 제외됐는데, 이런 역사적 과정도 짚는다.
또 뇌 질환이나 외상 등이 상상력 및 환각에 미치는 영향을 사례 연구를 통해 분석한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파킨슨병 환자의 환각 현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의한 감각 경험 등 신경학적 증상을 탐구하면서 상상의 역할과 경계에 대해 조명했다. 특히 아판타지아 환자들을 대면하며, 상상이 반드시 시각화를 동반하지 않으며 인간의 인지 과정에서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신경과학 연구와 문학적 인용, 철학적 사유를 교차하는 서술 방식을 구사한다는 것이 특히 흥미롭다.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와 윌리엄 셰익스피어, 그리고 현대 신경과학자들의 이론을 엮어 인간 상상력의 복합적 의미를 보여준다. 단지 과학서로 그치지 않고, 예술과 철학을 아우르는 통찰을 제공하여 읽는 재미를 더한다.
저자는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철학과 심리학을 전공한 뒤 의학과 신경학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권위 있는 신경과학자다. 케임브리지대와 런던 병원에서 뇌 영상과 신경계 연구를 했으며, 현재 엑서터대 의과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특히 시각 이미지 생성 장애인 ‘아판타지아’ 개념을 처음 제안하며 이 분야의 연구를 이끌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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