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자이언트’ 히로미, 재즈 천재의 ‘피 땀 눈물’…“120% 바쳐왔죠”

  • 뉴시스
  • 입력 2024년 5월 3일 05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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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재즈 신 간판…도쿄 올림픽 개회식 연주도
재즈 애니메이션 '블루 자이언트' 음악감독으로 재조명
소닉원더로 펑키한 음악 들려주며 진화
'제16회 서울재즈페스티벌 2024'로 내한

ⓒ뉴시스
종이에서 소리가 난다. 일본 만화가 신이치 이시즈카의 재즈 만화 ‘블루 자이언트’를 읽은 독자들이라면 수긍이 가능한 전제다.

일본 다치카와 유즈루 감독이 연출한 애니메이션 ‘블루 자이언트’(2023)에 ‘진짜 소리’를 불어넣은 이는 일본의 세계적인 재즈 피아니스트 우에하라 히로미(45·上原ひろみ). 그녀는 이 애니메이션의 음악감독으로서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작곡과 피아노 연주를 담당해 국내에서도 재즈 신드롬을 일으켰다.

‘블루 자이언트’는 색소폰에 빠져 전 세계 최고의 재즈 뮤지션을 꿈꾸는 미야모토 다이가 주인공이다. 그가 도쿄로 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다이는 천재 사와베 유키노리 그리고 초보 드러머 다마다 슌지와 재즈 밴드 ‘재스(JASS)’를 결성한다. 이들은 피, 땀, 눈물을 흘리며 일본 최고의 재즈바 ‘소 블루(So Blue)’ 공연을 목표로 한 걸음씩 나아간다.

국내에서도 누적관객 12만명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한 이 애니메이션에선 기분 좋은 땀내가 난다. ‘재즈의 거성(巨星)’인 천재 피아니스트인 히로미의 삶에도 물론 피, 땀, 눈물이 동반했다.

붉게 불타오르는 걸 뛰어 넘어 푸른 빛을 띄는 별이 ‘블루 자이언트’다. 재즈계에선 연주에 극도로 몰입해 푸른 별 같은 기운을 내뿜는 뮤지션에 대해 같은 말로 칭송한다. 히로미가 ‘블루 자이언트’인 셈이다.

다이가 입술이 터져 피가 나는데도 연주를 멈추지 않은 것처럼, 속주로 정평이 난 ‘천재’ 히로미 역시 손가락이 불어 터지는데도 쉬지 않고 건반 위를 오르내렸다. 히로미는 최근 뉴시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미야모토 다이의 말을 빌리자면 120%,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바쳤다”고 말했다.

미국 ‘그래미 어워즈’ 베스트 컨템포러리 재즈 앨범 부문 수상에 빛나는 히로미는 일본 재즈 신의 간판이다. 14세에 체코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해 실력을 인정받고 17세에 칙 코리아(Chick Corea)와 함께 공연했다. 20세에 버클리 음대에 진학해 전설적인 재즈 피아니스트 아마드 자말(Ahmad Jamal)의 멘토링을 받았다.

2003년 ‘어나더 마인드(Another Mind)’로 데뷔해 화려한 테크닉과 속주를 선보이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 등에 참여하며 스타덤을 굳혔다. ‘2020 도쿄 올림픽’(2021) 개회식에서 연주하기도 했다.

진화를 거듭해온 히로미의 무거우면서도 펑키한 음반 ‘소닉원더랜드(Sonicwonderland)’로 또 변화를 시도했다. 그녀의 새로운 콰르텟이자 히로미의 소닉원더(Hiromi‘s Sonicwonder)에는 베이시스트 헤드리안 페로우, 드러머 진 코예 그리고 트럼펫터 애덤 오파릴이 합했다.

이 구성으로 오는 31일부터 6월2일까지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리는 ’제16회 서울재즈페스티벌 2024‘(서재페 2024) 무대(첫날 공연)에 오른다. 히로미의 제대로 된 정식 내한공연은 2013년 이후 처음이다. 다음은 유니버설뮤직을 통해 히로미와 서면으로 나눈 일문일답.

-애니메이션 ’블루 자이언트‘가 한국에서 여전히 회자되고 있어요. 혹시 한국에서 이 애니메이션이 흥행했다는 얘기를 전해들으셨는지요. 기분이 어떠신가요? 이 애니메이션이 한국에서 흥행하고 있는 현상은 어떻게 보십니까?
“한국에 있는 친구가 정말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전해주더라고요. 새로운 관객에게 (재즈에 대한) 새로운 문을 열 수 있다면 기쁩니다.”

-원작 만화는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이 만화를 맨 처음 접한 때는 언제이고 무엇에 매력을 느꼈나요? 음악 감독 제안을 받고 함께 하게 된 과정, 계기도 궁금합니다.

“2014년부터 원작 만화가와 만났어요. 제 공연에 와서 만화책을 줬어요. 읽자마자 음악이 들리기 시작했고, 그걸 만화가에게 이야기했죠. 만화책에 악보가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제가 들리는 대로 써서 드렸죠.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실제 음악은 이미 만화에 악보로 존재했죠. 오랫동안 음악을 써왔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을 위한 음악을 쓰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애니메이션 제목은 ’재즈의 거성(巨星)‘을 뜻한다고 하지요. 재즈 뮤지션들에게 ’블루 자이언트‘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재즈 거성들은 현재와 과거 모든 시간에 존재합니다.”

-애니메이션 속 재즈 팀은 트리오 구성입니다. 피아노, 색소폰, 드럼인데요. 이 편성으로 ’퍼스트 노트(FIRST NOTE)‘ ’위 윌(WE WILL)‘ 등 오리지널 음악을 만드실 때 가장 신경 쓴 지점은 무엇인가요? 만화에서 상상했던 음악들을 현실로 어떻게 구현하려고 하셨습니까?

“다양한 버전의 곡을 만들면서 다치카와 유즈루, 각본가, 만화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애니메이션 속 피아노 파트를 담당하셨는데요. 극 중 사와베 유키노리도 물론 뛰어난 연주자지만 젊고 남성인 만큼, 히로미 씨의 연주 스타일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설정이라 이번에 피아노 연주는 다른 해석을 많이 가한 것 같습니다. 어떤 방법을 취했고 가장 고민한 지점은 무엇이었나요?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연기‘를 해야 한다는 점이었죠. 10대가 돼야 했어요. 18세 때의 제 모습을 기억하려고 노력했고 최대한 이미지에 가깝게 연기하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히로미 씨 역시 청년의 때를 지난 만큼 극 중 주인공들의 열정에 많이 감화를 받았을 거 같아요. 이들의 열정은 어떻게 보셨고 히로미 씨가 젊을 때는 어떤 열정을 갖고 있었나요?

“가장 닮았다고 느낀 부분은 다이가 관객이 몇 명 안 되더라도 지금 공연하는 게 멋지다고 말할 때였어요. 관객 수는 제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어요. 공연하는 건 언제나 행복하고 설렜습니다. 물론 제 음악을 공유할 수 있는 관객이 많으면 물론 행복하겠지만, 저는 항상 공연하는 것이 행복하고 설렜어요.”

-원작자님은 음향 등을 생각해서 애니메이션 공개 형태 중 극장판을 가장 선호하신 걸로 압니다. 히로미 씨가 생각하시는 재즈를 듣기에 가장 좋은 환경 같은 게 있나요?

“스피커와 사운드 시스템이 좋을수록 밴드가 바로 옆에서 공연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역시나 실제로 공연을 보는 것이 최고입니다.”

-히로미 씨에게 ’소 블루(So Blue)‘ 같은 곳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목표를 달성했나요? 그래미 수상, 도쿄올림픽 개막식 연주 등 인상적인 커리어를 쓰셨는데요. 또 다른 목표는 무엇입니까?

“특별히 꿈꾸던 ’장소‘나 ’무대‘가 없었습니다. 물론 블루노트, 움브리아 재즈, 뉴포트 재즈, 몽트뢰 재즈 등 많은 유명 클럽이나 페스티벌에서 연주할 때 감격스러웠지만 다른 어떤 무대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 적은 없어요. 매 공연마다 그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모든 무대가 똑같이 중요하죠.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항상 100%, 미야모토 다이의 말을 빌리자면 120%,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바쳤어요.”

-2003년 ’어나더 마인드(Another Mind)‘를 기점으로 따지면 지난해가 데뷔 20주년이었죠. 20년 동안 음악을 해올 수 있다는 건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매우 감사하지만, 그냥 지나가는 한 지점일 뿐입니다. 그저 하루하루 훈련을 받고 계속해서 노력을 하는 것일 뿐입니다. 매일 한 걸음씩 나아가는 거죠.”
-내한공연하신 지 꽤 오래된 것으로 압니다. ’제16회 서울재즈페스티벌 2024‘를 통해 무려 11년 만에 정식 내한하는 것으로 아는데요. 그간 당신을 기다린 한국 팬들이 정말 많습니다. 이번 공연에 대해 어떤 기대감을 갖고 있나요?

“무척 설렙니다. 공연과 한국 방문과 사람 그리고 음식 모두를 사랑합니다.”

-특히 진화를 거듭해오셨는데 이번엔 소닉원더(Hiromi’s Sonicwonder)로 내한을 하십니다. 펑키한 점이 특징인데 이 팀을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 팀을 통해 어떤 음악을 들려주고 싶으십니까?

“2016년 베이시스트 헤드리안 페로우를 만났는데, 그와 특별한 음악적 케미를 느꼈어요. 거기서 시작해 그를 포함한 밴드 음악을 쓰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밴드의 사운드 이미지가 더 선명해졌어요. 따뜻하고 유쾌한 드럼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을 찾다가 진 코예에게 밴드 일원이 돼 달라고 부탁했죠. 마지막은 트럼펫이었어요. 제 음악에서 트럼펫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따뜻하고 어두운 소리를 동시에 내면서 한 방을 줄 수 있는 트럼펫을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을 찾다가 애덤 오페릴을 만났죠. 그렇게 밴드를 결성하게 됐습니다.”

-NPR ‘타이니 데스크’에 출연한 걸 봤는데 짧지만 인상적이었습니다. 앨범 ‘소닉 원더 랜드’작업 중간에 출연한 걸로 아는데 이 출연이 앨범 작업에 끼친 영향이 있나요?

“앨범 작업을 마치고 바로 출연했습니다.”

-‘소닉 원더 랜드’에선 피아노를 비롯 총 세 대의 건반을 연주하는 것 같더라고요. 정말 멋진 퍼포먼스이자 연주였는데 이런 방식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항상 여러 키보드 소리를 좋아하고 연주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연주할 기회가 없었는데, 드디어 지금이 바로 연주하고 즐길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머릿속에서 곡을 위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지금 하고 있습니다.”

-‘소닉원더 랜드’는 단순히 재즈 음반이라고 표현하기엔 부족한 듯합니다. 전자음악, 클래식을 오가는데요. 이번 음반은 당신의 음악세계에 어떤 도움을 줬나요?
“저는 다양한 음악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제 음악에서 다양한 인풋이 많이 들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재즈는 아직도 한국에서 마이너한 장르입니다. 그래서 일본의 재즈 환경을 부러워하는 국내 재즈 마니아들이 많죠. 재즈 활성화를 위한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미디어가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TV에서는 인스트루멘털 밴드를 소개하고, 신문에서는 재즈 뮤지션 등을 집중적으로 소개할 수 있습니다. 페스티벌은 젊은 관객을 많이 끌어들이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확실히 도움이 됩니다. 물론, 이제는 가족이 함께 같은 TV 프로그램을 보거나 같은 음악을 듣지 않고 각자 개인 휴대폰이나 기기를 가지고 개별적으로 무언가를 보거나 듣는 시대입니다. 적어도 라이브 음악은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이죠. 가족, 친구, 아무리 ‘개인적’이더라도 함께 찌개를 먹는다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지 않나요? 50대가 10~20대 자녀와 함께 공연에 가서 함께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기회입니다. 함께 음악을 즐기자고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당신은 여성, 동양인이라는 편견을 깬 멋진 아티스트죠. 혹시 당신에게 남겨져 있다고 생각되는 편견이 있나요?

“이 질문을 참 많이 받았는데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묵묵히 연주를 할 뿐입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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