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이 작은 마을이 관광객을 끌어오는 방법[전승훈의 아트로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0월 7일 14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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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번성했던 동네가 쇠락한 후 사람들이 떠나 버린 마을은 고민이 크다. 우리나라에도 강원 태백, 정선 등 한때 탄광촌으로 북적였던 도시가 폐광이 된 후 사람들이 떠나버린 도시가 많다. 일본 히로시마와 오카야마의 소도시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을의 전통주택과 창고를 개조하고, 애니메이션과 고양이길을 활용해 명소로 다시 태어난 마을도 있었다. 우리에게도 화두인 ‘지속가능성’ ‘도시재생’의 아이디어를 만나볼 수 있는 여행을 떠나보았다.

버려진 염전마을, 애니메이션과 마을 분산식 호텔
일본 히로시마의 다케하라(竹原)는 에도 시대에 소금과 사케 주조업, 대나무 죽세공품으로 번성한 세토 내해의 항구마을이다. ‘히로시마의 작은 교토’로 불릴 정도로 전통가옥이 잘 보존돼 있는 도시였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염전이 사라지고, 소금생산량이 대폭 줄게 되면서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가게 됐다.

다케하라 염전이 있던 시절의 사진.
다케하라는 에도~메이지 시대의 옛 건축물들을 잘 보존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 여행지로 꾸몄다. ‘다케하라 미치나미 보존지구’는 식당과 커피숍, 기념품 가게, 서예 강습교실, 도예공방, 양조장 등으로 활용되는 시골 주택을 천천히 둘러볼 수 있는 고즈넉한 마을이다.

다케하라(竹原)는 대나무 숲이 유명해 전남 담양하고 자매결연을 맺은 도시다. 거리 곳곳에 대나무 공예품이 눈에 띈다. 공중전화 박스는 대나무로 장식돼 있고, 마을 수로 위에는 아치형 대나무 공예로 장식해놓아 안전과 멋스러움을 한번에 잡았다.

대나무로 장식한 공중전화박스.
19세기에 개업한 사케 주조장에 있는 사카쿠라 교류관(酒蔵交流館)에서는 전통 주조장 견학과 시음, 술잔과 도자기, 수저 등 공예품 쇼핑도 즐길 수 있다.

사카쿠라 교류관.
흥미로운 점은 타케하라가 젊은이들의 발길을 다시 불러오기 위해 TV애니메이션을 활용했다는 점이다. 일본에서는 젊은이들에게 영화보다는 TV애니메이션 시리즈가 더 인기이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 ‘타마유라(たまゆら)’는 바로 다케하라 마을을 배경으로 사진 클럽 여고생들의 우정을 그린 드라마다.

다케하라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한 TV애니메이션 ‘타마유라’.
다케하라 곳곳에는 이 애니메이션의 포스터가 붙어 있는데, 다케하라의 명소와 건물들을 그대로 실사처럼 담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다케하라 거리의 끝자락에는 조그마한 사당도 나오는데,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다케하라에서 또다른 주목할만한 아이디어는 마을 분산형 숙박업소 ‘니포니아(Nipponia) 호텔’이었다. 시골의 비어 있는 고민가(古民家)를 숙소로 활용해 조성한 마을 호텔이다. 체크인과 ‘호텔 리셉션’라고 쓰여 있는 집에서 하고, 객실 A동은 이 골목에 있고, 객실 B동이나 레스토랑은 저 골목에 있는 식이다.

니포니아호텔 리셉션.
니포니아호텔 객실.
고객은 체크인 후에 방을 찾아가고, 식사를 하기 위해 작은 골목길을 찾아다니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호텔 내부는 오래된 빈집을 현대적인 인테리어로 개조해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니포니아 호텔은 인구감소로 쇠락해가는 농촌마을 전체를 하나의 부티크 호텔의 세계관으로 만들어버리는 로컬 브랜딩 기업인 셈이다.

우리나라에도 안동, 경주 등에서 한옥스테이, 고택스테이가 인기를 얻고 있다. 종갓집처럼 크고 멋진 한옥 건물에서 잠을 잘 수 있지만, 대부분 개인이 운영하기 때문에 서비스의 질은 천차만별일 수 밖에 없다. 반면 니포니아 호텔은 한국의 고택스테이보다 겉으로 보기엔 볼 품 없는 목조주택이지만, 기업이 운영하다보니 전문적인 호텔교육을 받은 직원들의 서비스 질은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니포니아 호텔은 일본 전역에서 이러한 전통 민가를 활용한 호텔 10여 곳과 함께 성, 신사, 절 등의 문화재 등을 활용한 숙박시설도 13곳에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니포니아호텔 레스토랑


에도시대의 풍경을 담은 마을
일본 오카야마현의 쿠라시키는 일본 최초의 방직공장이 있던 작은 소도시다. 시내 중심에는 청계천만한 작은 개울이 흐른다. 개울가에는 수양버드나무 가지가 늘어져 있고, 강물 속에는 백조가 한가롭게 놀고, 물 위에는 작은 배들이 떠다닌다. 에도 시대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작은 도시다.

쿠라시키 미관지구는 우리나라의 익선동 골목길처럼 2~3층으로 된 일본 전통 목조가옥들이 밀집해 있는 골목길이 이어진다. 골목길에는 바퀴 2개가 달려 있는 인력거가 다닌다. 골목길을 걸으며 헌책방과 민예품 판매장, 옷가게 등에 들어가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쿠라시키 여행의 참맛이다.

강변을 걷다보면 오하라(大原) 미술관이 보인다. 전통가옥 사이에 그리스 신전처럼 이오니아 양식으로 지어진 석조건물이 우뚝 솟아 있다. 1930년에 문을 연 일본 최초의 근대미술관이자 사립미술관이다.

쿠라시키 오하라 미술관
엘 그레코의 ‘수태고지’를 비롯해 고갱, 마네, 모네, 마티스, 르누아르, 피카소, 칸딘스키를 비롯해 세계미술사를 관통하는 작가들의 걸작이 이 작은 미술관에 모여 있다. 미술관의 소장품만도 3500여점이 넘는다고 한다.

오하라미술관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두 친구의 깊은 우정이 있었다고 한다. 구라시키 방적(구라보·倉紡) 창업자인 오하라 마고사부로(大原孫三郞·1881~1943)와 그의 동갑내기 친구인 화가 고지마 토라지로(兒島虎次郞, 1881~1929). 오하라는 고지마를 5년 동안 세 번씩이나 유럽에 유학시켜 주었고, 고지마는 오하라를 위해 유럽에서 명작들을 컬렉션했다고 한다. 오하라미술관에는 고지마가 1911년 그린 ‘기모노를 입은 벨기에 여인’도 전시돼 있다. 안타깝게도 고지마는 48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사망한 이듬해인 1930년. 오하라는 친구를 기리는 마음에서 친구가 수집해온 컬렉션을 위주로 오하라 미술관을 설립했다고 한다.

오하라 미술관.
골목길을 걷다보면 빨간 벽돌로 된 창고건물을 만나게 된다. 1889년에 지어진 일본 최초의 방직공장이다. 현재는 ‘아이비 스퀘어(Ivy Square)’라고 불리는 서양식 호텔과 전시장, 식당가로 구성된 복합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아이비스퀘어.
방직공장이 있었기 때문인인지 쿠라시키에는 푸른색 질긴 면직물인 ‘데님(denim)으로 만든 패션 소품을 파는 가게들이 몰려 있다. ’청바지 골목‘ ’데님 천국‘으로 불리는 골목이다. 일본의 상점에서는 ‘영업중’임을 표시하는 노렌을 문 앞에 걸어놓는 데, 이 곳에는 데님 소재의 푸른색 천으로 만든 노렌을 걸어놓은 곳이 많았다.​

방직공장 창고 바로 앞에 있는 ‘데님 연구소’에는 실제로 미싱이 놓여 있는 작업대가 놓여 있다. 여기에서 미니어처 청바지 모양의 열쇠고리를 기념품으로 샀다. 실제 청바지처럼 스크래치, 패치워크 등의 작업이 된 모양이 무척이나 귀여웠다.

현재 아이비스퀘어 전시장 별관에서는 쿠라시키에 본사를 두고 있는 마스킹테이프로 유명한 ‘카모이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쿠라시키는 요즘 ‘다이어리 꾸미기’용으로 인기가 높은 문구용품인 마스킹테이프의 발상지로도 알려진 도시다. 마스킹 테이프는 100년 전 차량에 페인트를 도색할 때 페인트가 묻지 않아야 하는 부위에 붙이는 공업용 도구로 개발됐다고 한다.

그런데 마스킹 테이프를 예쁜 인테리어 도구로 사용하고 있던 고객을 만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카모이 가공지는 공업용 마스킹 테이프를 문구용으로 업그레드한 브랜드를 개발하게 됐다는 스토리다. 쿠라시키의 모든 기념품 샵이나 화장품, 비누가게, 옷가게의 쇼윈도에는 ‘카모이 mt 100주년’을 알리는 깃발이 달려 있어 마스킹테이프 열렬 애호가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었다.



자전거 족과 고양이 집사의 성지
일본에는 사이클 성지로 불리는 장소가 있다. 바로 ‘시마나미카이도’. 세토나이카이를 가로지르며 혼슈의 오노미치에서 시코쿠의 이마바리를 잇는 약 70km 거리의 자전거 코스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시마나미 카이도는 CNN이 선정한 세계 7대 자전거 코스 중 하나다. 해안도로와 다리를 가로지르는 자전거도로 옆으로 펼쳐지는 세토내해의 수천 개의 작은 섬들과 아름다운 바다가 어우러지는 풍경은 환상적이다. 사이클링 숙련자들은 3~4시간이면 완주할 수 있어 전세계 자전거 족이 몰려드는 코스다.

세토내해 섬과 바다를 잇는 자전거도로인 ‘시마나미카이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센코지산 전망대.
시마나미카이도의 출발점에 있는 오노미치(尾道)의 해변창고를 개조해 만든 U2는 ‘자전거족을 위한 호텔’을 표방한다. 오노미치는 한때 해운물류의 집산지로 번성했지만, 1960년대부터 주변의 공업지역으로 사람과 회사가 빠져나가면서 도시의 매력을 잃어갔다.

약 2000㎡ 크기의 콘크리트 해운창고를 개조해 만든 U2는 호텔과 함께 레스토랑, 카페, 바, 기념품숍, 자전거 브랜드 자이언트(Giant) 판매점까지 들어와 있는 ‘사이클족을 위한 호텔 복합시설’이다. 호텔에서 숙박하면서 아침먹고, 쇼핑하고, 커피와 빵과 와인, 위스키를 마시고, 자전거 수리도 할 수 있다.

오노미치에서는 센코지산 정상의 전망대까지 로프웨이가 설치돼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세토내해의 섬들과 바다, 도시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내려올 때는 ‘문학의 길’로 꾸며진 산길로 걸어내려오는 것이 좋다. 산길을 걷다보면 텐네이지 삼중탑과 우시토라 신사까지 약 200m 구간에 ‘고양이 오솔길(猫の細道)’가 나온다. 오솔길에는 차돌 위에 고양이 얼굴이 그려넣은 ‘복돌 고양이(福石猫)’가 계단과 담장, 풀숲 곳곳에 숨어 있다. 실제 고양이처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숨어서 사람들을 지켜보는 모습이 귀엽기 그지 없다.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예술가 소노야마 슌지(園山春二)가 1998년부터 돌을 색칠해 만든 고양이 오브제다. 예술가는 담벼락이나 길바닥의 시멘트가 갈라진 틈의 모양을 그대로 이용해 고양이의 몸통이나 얼굴, 발바닥을 그려넣었습니다. 이 길에서는 실제 고양이들도 만나볼 수 있다. 한낮의 고양이들은 관광객도 아는 체 하지 않고 늘어져 잠을 자기에 바쁘다.

예쁜 복돌 고양이가 놓여 있는 ‘고양이 오솔길’은 고양이 집사들에게 꼭 한번 와보고 싶은 성지가 됐다. 사람들이 떠났던 도심의 산동네에 활기가 생겼고, 빈집을 개조해 만든 미술관이나 카페, 공방들도 하나둘 생겨났다. 오노미치의 고양이 길은 소니 미러리스 카메라 CF에도 배경으로 나오기도 했다. 오노미치 시내 카페거리에도 고양이 캐릭터를 활용한 카페와 기념품 숍이 관광객들의 발길을 모은다. 


히로시마·오카야마=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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