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서스펜스가 되어버린 엄마의 노동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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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식탁/야즈키 미치코 지음·김영주 옮김/380쪽·1만5500원·문학동네

식탁 위 하얀 우유가 엎질러진 모습을 표지로 담은 이 소설은 한 엄마가 자신의 아홉 살짜리 아들 ‘유’를 폭행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곧바로 유를 사랑하는 다정한 엄마 아스미의 일상으로 전환된다. 전업주부이자 한 아이의 엄마, 한 남자의 아내로서 행복을 느끼는 그녀에게 대체 어떤 일이 생긴 걸까 궁금할 무렵, 소설은 또 다른 ‘유’를 독자 앞에 들이민다.

책에는 총 세 명의 ‘유’와 엄마가 등장한다. 세 아이의 엄마는 각각 아스미, 루미코, 가나. 아스미는 남편의 안정적 수입으로 세 엄마 가운데 가장 윤택한 삶을 누린다. 루미코는 프리랜서 작가, 가나는 바람을 피워 집을 나간 남편과 헤어진 싱글 맘이다.

세 가정의 모습이 교차되는 가운데, 엄마들은 시간이 갈수록 한계에 부딪힌다. 아스미는 차분하기만 했던 아들 유가 학급 친구들을 괴롭히고 있었음을 알게 되고, 그때부터 유는 아빠와 할머니에게도 거친 언행을 일삼는다. 그녀의 남편은 아들의 문제를 회피하며 “네가 교육을 잘못했다”고 비난만 한다.

루미코의 남편은 프리랜서 사진작가다. 남편은 자신의 일이 줄어들며 무기력해지자 가정의 수입을 책임지게 된 루미코를 되레 비꼬기 시작한다. 집안일과 육아를 분담해달라는 아내의 제안에 억지로 응하더니 급기야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가나의 아들 유는 가장 착한 아이로 그려지지만, 같은 반 친구의 계략으로 도둑이라는 누명을 쓴다.

이 세 명의 유 중 엄마의 손에 죽임을 당한 아이는 누구일까. 긴장하며 소설을 읽게 되는 건 세 엄마가 처한 상황이 자칫하면 극단적으로 치달을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식탁 위 컵에 담긴 흰 우유가 엎질러지듯 말이다. 이해할 수 없는 아이, 양육의 책임을 떠넘기는 남편 등의 요소가 결합되면 엄마는 무너지고 행복했던 집은 하루아침에 지옥이 된다. 섬세한 감정 묘사를 통해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겪는 한계 상황을 현실적으로 드러낸 점이 인상적이다. 제3회 가나자와서적 대상 수상작.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내일의 식탁#야즈키 미치코#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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